송기원 시인 / 들판에서 외 2편
송기원 시인 / 들판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대의 소식을 가을 들판에서 비로소 들었습니다. 멀리 벌판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단내를 풍기며 그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벌판 가득히 오지게 잘 여문 이삭들과 그 이삭을 거머쥔 농부의 구릿빛 팔뚝이 또 그대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저무는 가을 햇빛, 군데군데 비어 있는 논밭, 여기저기 자랑스럽게 피어 있는 가을꽃들도 빛나는 몸짓으로 그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십 년을 넘어, 헛된 땅으로 헛되이 찾아 헤매다 이제는 빈 쭉정이가 되어 가을 벌판에 나자빠져버린 나를 안쓰러워하며, 어루달래며 오늘 비로소 그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둘러보는 벌판 가득히 온통 그대뿐인데 어째서 나는 그토록 눈멀 수 있었을까요. 돌아오는 길에는 우연이듯 싱싱한 별도 몇 개 돋아서 다시 한번 그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송기원 시인 / 이미자 노래나
미국놈들도 도둑놈이고 우리도 도둑년이에요. 쑥고개 기지촌에 몸 담은 지 삼 년 국제결혼에 홀려 정 몇 번 주고 아이 한 번 떼고, 성병 두어 번 흰둥이 검둥이 두루 거친 다음에 오늘은 김치냄새 나는 당신이 손님이에요. 전라도 땅끝 흙부뚜막에 된장 뚝배기 끓던 고향집을 나라고 차마 잊을 수야 있나요. 자, 우리 나가요, 빠다냄새 나는 돈으로 한잔 살 테니. 어디 해장집 가서 소주병 까면서 이미자 노래나 오지게 불러요.
송기원 시인 / 붉은 꽃잎
여주에 가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스님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스님의 우란분재에 저는 어머님의 천도를 맡겼습니다. 스님의 염불에 따라 어머님의 신위가 연기로 사라질 때, 그 연기에 취해 배롱 나무 붉은 꽃잎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사랑이여, 저의 마음속 붉은 꽃잎은 언제 어디서 무슨 연기에 취해 떨렸을까요. * 우란분재(盂蘭盆齋): 불교에서 사후에 고통 받고 있는 자를 위해서 음력 7월 15일에 음식을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盂蘭盆)은 '심한 고통'이란 뜻을 가진 범어 '울람바나(ullambana)'의 음을 취해 만든 한자어임(옮긴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