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용헌 시인 / 묵지 외 5편

파스칼바이런 2025. 7. 3. 09:55

이용헌 시인 / 묵지墨池

 

 

벼루의 가운데가 닳아 있다

움푹진 바닥에 먹물이 고여 있다

바람을 가르던 붓끝은 문밖을 향해 누웠고

막 피어난 풍란 한 촉 날숨에도 하늑인다

고요가 묵향을 문틈으로 나른다

문살에 비친 거미가 가부좌를 푼다

격자무늬 창문을 살며시 잦힌다

달을 품은 창문은 한 장의 묵화

어둠 갈아 바른 허공에도 묵향이 퍼진다

지상의 화공이 붓을 들어 꽃을 그릴 때

천상의 화공은 여백만 칠했을 뿐

달을 그린 화공은 어디에 있는가

길 건너 미루나무 먹빛으로 촉촉하고

검푸른 들판 위에 연못이 잠잠하다

갈필(渴筆)로 그리다 만 한 생애만이

마음속 늪지에서 거친 숨 적시고 있다

 

- 시집 『점자로 기록한 천문서』(천년의시작, 2016)

 

 


 

 

이용헌 시인 / 행성 탈출 프로젝트

일곱 명의 대원을 태우고 떠난 비행선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의 최종 안착지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은 일심동체로 이 외롭고 쓸쓸한 행성을

떠나고 싶었으리라는 심증 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왜 이 거대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고향도 가족도 다 버리고

그처럼 묵묵하게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게다가 하필이면 모두가 잠든 야음을 틈타

서둘러 발진을 시도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목격자에 의하면 그들은 고도의 비행 훈련도

단 한 번의 우주 유영도 배운 적이 없지만

평생을 바쳐 체득한 직관과 달관과 모험정신으로

저마다 숙련된 발사 요령을 터득했다고 한다.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들 모두 하나의 목표를 가진 동료였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전혀 몰랐다는 것

혹은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면서도

가난이라는 절대자 아래서 똘똘 뭉쳤다는 것

더구나 이상한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슬픔이

그들의 오랜 밀행을 관제(管制)해 왔다는 것

 

어떤 이는 한순간의 전기스파크를 이용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정체 모를 가스에너지를 이용했다고 하고

어떤 이는 꿈속에서 웜홀(wormhole)을 통과했다고 했으나

그들이 가장 완벽하게 그곳을 떠난 방법은

오로지 그들만이 알고 있었을 터

 

검붉은 화염과 함께 함성들이 터져 나오고

폭음을 터뜨리며 비행선이 사라진 후

사람들은 이륙에 성공한 일곱 대원의 출신성분이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막막하게 숨어 지내며 기지(基地)로 쓰고 간 고시원은

긴급 출동한 소방차에 의해 낱낱이 해체된 채

까맣게 타들어 간 내막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용헌 시인 / 로제타

 

 

내가 그곳을 떠났을 때

그 나라의 지도자는 노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성을 버리고 낙향하여 논에 오리를 풀어 농사를 지었다.

냇물은 논물이 되고 논물은 다시 냇물이 되었다.

 

내가 그곳을 떠나 우주를 날고 있었을 때

그 나라의 지도자는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은하보다는 운하를 좋아하여 강과 강마다

삽질과 망치질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부터 강물은 흐름을 멈추고 호수로 변해갔다.

 

내가 그곳을 떠난 지 십 년이 흐르고

64억 킬로미터를 날아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 나라의 지도자는 박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 순간에도

머리를 왕후처럼 올리고 거울 앞에서 화장을 즐겼다.

그때부터 바다란 바다는 지옥으로 변해갔다.

 

나는 천만다행으로 그 나라의 반대쪽에서 태어나

로제타라는 이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고

무량 무극한 어둠과 고독과 침묵과

명예보다 찬란한 별들을 하사품으로 받았다.

나는 이제 1,500개의 언어로 만든 그곳의 소식을 안고

67P라는 꼬리별에 장렬하게 전사할 것이다.

 

내가 마지막 몸을 불태우기 전

멀고 먼 그 나라의 사람들을 호명하는 것은

그곳이 나 태어난 별에서 가장 진화가 덜 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종족끼리 칼을 겨누고

혈육끼리 이전투구를 하며

차디찬 물속에서 단말마 소리가 들려도

물속에 비친 달이나 들여다보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용헌 시인 / 막막궁산에 들다

 

 

돌 속을 하염없이 걷는다

돌길을 걷다가 돌이 된 나를

돌들은 알고 있을까

 

돌이 되기 전의 나는 흙밭에서 놀았다

흙으로 뭉쳐진 구름 아래 흙으로 버무린 집 앞에서

흙을 뒤집어쓰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땅따먹기 놀이를 하면서

 

물가의 작은 조약돌을 날라와 탑처럼 쌓기도 했지

늘 층을 이루지 못하고 미끄러지던 돌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면

한 번도 따뜻해진 적 없던 내가 무람해

가뭇없이 돌 속을 생각했지

 

돌 속에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도 잊은 채

막막궁산 막돌이 되고 싶었지

 

돌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나날들

 

돌과 돌을 부딪쳐 불을 붙이고 고기를 굽고

동굴 속에서 사랑을 나누던 삼만 년쯤 전에도

돌은 상흔을 감추고 흙 속에 박혀있었지

흙 속에 박힌 채로 캄캄한 고독과 마주했지

 

돌아설 수 없는 시간을 껴안은 채

흙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씨를 터뜨리며

어둠의 영토를 밀어냈지만

그래도 막막하여

돌 속을 거니는 나여

 

천지사방 아득한 돌 위에 누워 고요히 눈을 감으면

돌 속으로 걸어가는 사슴

돌 속으로 날아가는 새

돌 속으로 헤엄쳐가는 고래

 

꿈길을 걷다 꿈속으로 간 나를 꿈이 모르듯

돌길을 걷다가 돌이 된 나를

돌들은 알고 있을까

 

소소막막 닿을 수 없는 태초의 바위 위에

맨 처음 암각화를 새긴 이는 누구였을까

 

 —계간 《문예바다》 2023년 봄호

 

 


 

 

이용헌 시인 / 뻘밭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다

물음표 모양의 쇠갈고리를 들고

폐지뭉치를 퍽퍽 찔러대는 그의 오른손은

의문투성이다

 

다섯 손가락 중 세 개는 보이지 않았다

남은 두 개는 엄지와 검지뿐이었다

검은 눈썹 아래 짙푸른 눈망울을 끔뻑이며

온종일 1톤 트럭에 폐지를 싣는 그의 손놀림은

뻘밭을 기어가는 게발 같았다

 

끼니때마다 그의 왼손에는 바다가 들려 있었다

그가 마른기침을 할 때마다 파도는 넘실거렸다

가끔은 은빛 숟가락을 입에 문 게발이

펄펄 끓는 순두부 사발에 꼼지락거리다가

땡그랑 댕댕, 나동그라지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붉은 노을이 제본소 바닥에 흩어졌다

 

모르겠어요 이제는 맵지 않아요

그의 혀끝은 이미 바다 건너 두고 온 맛과 키스와

달콤한 모국어를 잃어버렸다

세 개의 손가락이 잘려나간 이후

그는 더 이상 아내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고향은 방글라데시,

인도양의 푸른 파도가 제본기의 책갈피처럼

펄럭이며 밀려올 때면

그는 공장 한 귀퉁이 폐지뭉치 위에서

낡은 지도책을 펴놓고

엄지와 검지로 바다의 거리를 재기도 하였다

 

 


 

 

이용헌 시인 / 네오리얼리즘에 관하여

 

지산동 삼거리에서 도청 앞으로 가는 농장다리 위에서 보았다.

저 멀리 학교 앞에 군용트럭 몇 대가 서 있었다.

트럭 위에는 착검한 총과 몽둥이를 든 군인들이

내 또래 학생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있었다.

머리통이 주저앉으면 정강이를 걷어차서 일으켜 세우고

정강이가 일어나면 다시 머리통을 내리쳐서 주저앉히고

그러다가 고꾸라지면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군홧발들이 튀었다.

나는 총알보다 더 빨리 달리는 한 마리 짐승이었다.

마음보다도 빨리 발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 이후로는 어떤 이념도 나를 지배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어떤 사상도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내가 나를 다스리는 것만이 유일한 학습이고 철학이었다.

농장다리 부근에 백목련이 피었다 진 기억도 잊고 살았다.

다만 오랜 후에 흰 무명옷을 입은 어머니들이

망월동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꽃도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는지 책을 뒤지고 종교를 뒤졌다.

학살도 학설도 다 땅에 묻히고 난 헛된 봄날이었다.

 

 


 

이용헌 시인

1959년 광주에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통해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작 시인선 <점자로 기록한 천문서>. 도서출판 돋을볕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