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심보선 시인 / 풍경 외 5편

파스칼바이런 2025. 7. 5. 20:12

심보선 시인 / 풍경

 

 

 1

 

 비가 갠 거리, XX 공업사의 간판 귀퉁이로 빗방울들이 모였다가 떨어져 고이고 있다. 오후의 정적은 작업복 주머니 모양 깊고 허름하다. 이윽고 고인 물은 세상의 끝자락들을 용케 잡아당겨서 담가 놓는다. 그러다가 지나는 양복신사의 가죽구두 위로 옮겨간다. 머쉰유만 남기고 재빠르게 빌붙는다. 아이들은 땅바닥에 엉긴 기름을 보고 무지개라며 손가락으로 휘젓는다. 일주일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지독한 무지개다...... 것도 일종의 특허인지 모른다.

 

 2

 

 길 건너 약국에서 습진과 무좀이 통성명을 한다. 그들은 다 쓴 연고를 쥐어짜내듯이 겨우 팔을 뻗어 악수를 만든다. 전 얼마 전 요 앞으로 이사왔습죠. 예, 전 이 동네 20년 토박이입죠. 약국 밖으로 둘은 동시에 털처럼 삐져나온다. 이렇게 가까운 데 사는 구만요. 가끔 엉켜 보자구요, 흐흐흐. 인사를 받으면 반드시 웃음을 거슬러 주는 것이 이웃간의 정리이다. 밤이 오면, 거리는 번지르하게 윤나는 절지동물의 다리가 된다. 처방전 만하게 불 켜지는 창문들.

 

 3

 

 마주보고 있는 불빛들은 어떤 악의도 서로 품지 않는다. 오히려 여인네들은 간혹 전화로 자기네들의 천진한 권태기를 확인한다. 가장들은 여태 귀가하지 않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마냥 그녀들은 불안하다. 기다림의 부피란 언제나 일정하다. 이쪽이 체념으로 눌리면 저쪽에선 그만큼 꿈으로 부푼다. 거리는 한쪽 발을 들어 자정으로 무겁게 옮아간다. 가장들이 서류철처럼 접혀 귀가하고 있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심보선 시인 / 다시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는 생전에

사농공상(士農工商)을 다 거쳤다

산전수전(山戰水戰)까지는 아니고

 

아버지는 어린 내게 영국식 영어를 가르쳤다

낫[nat] 놓고 놋[nɒt] 이라 했다

 

아버지는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자

KBS라디오국에 전화를 걸어 인터뷰 요청을 요청했다

 

아버지와 나는 한 번도 술잔을 나눈 적이 없다

둘 다에게 엄습할

둘 다 견딜 수 없음을

어떤 적막함의 예감 때문이었으리라

 

아버지는 평생 아버지식으로 살았다

 

유학 시절 우울증 치료를 받을 때

상담사가 물었다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아버지처럼 사는 거요

 

상담사가 말했다

아버지처럼 살 수도 있어요

 

그 자리에서 상담사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아임 놋 마이 파더!

 

상담사는 아름다운 백인 여자였다

물론 그래서 죽이지 못한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평생 아버지식으로 살았다

그게 비극으로 치닫으리라는 것을

식구들은 진즉부터 알았다

물론 아버지 자신도

 

아버지는 프랑스식으로 떠났다

작별 인사도 없이 거만하게

 

아버지는 불교식으로 떠났다

앉은 채로 숭고하게

 

시에 아버지 이야기는 안 하려 하는데 쉽지 않다

시 말고는 아버지 이야기 할 데도 없다

 

이 시에서 아버지를 열일곱 번 아니 열여덟 번 언급했다

 

스무 번을 채운다 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효도도 애도도 불충분했다

다 아버지 탓이다

아니 내 탓이다

아니 아버지 탓이다 끝

끝내 스무 번을 채웠다

 

역시 달라진 것은 없고

이 시는 그저 그렇고

나는 내 식으로 서럽고 서러울 뿐이다

 


 

심보선 시인 / 실향(失鄕)

 

 

설 전날, 엄마랑 고모랑, 허름한 동네 식당에서 아구찜을 먹다,

남편도 없고 아버지도 없는 이 날을 명절이라 하기에는 처량하도다.

아버지, 하고 속으로 부르니 슬픔이 미더덕처럼 터져

맘 한구석이 크게 데이다.

식당 안쪽 골방을 보니 말로만 듣던 하우스라,

고향이 철천지 원수가 된 사내들,

거나한 도박판이라, 과묵한 패가망신의 영토라,

그들의 비루한 나날이 고모랑 엄마의 청승과 도무지,

상관 없는 듯도 하고, 있는 듯도 하여라,

생선 가시를 퉤퉤, 발라가며 수다꽃을 피우는 두 여인네 사이에,

나는 한 마리 어색한 남정네, 후식이랍시고,

그것도 명절 선심이랍시고,

자판기 커피 홀짝이며, 문틈으로 엿보이는 힘줄 돋은 손아귀들,

휙휙 뒤집혀 착착 붙는 화투패들에게로,

생선뼈처럼 의뭉스런 눈길을 보내네.

밥 다먹고 기억 아득한, 골목 길 되짚어 고모댁네 들러,

설 전날이라, 까치설날이라, 명란젖이며, 만두며,

곶감이며, 점점이, 알알이, 주거나 받거니,

엄마랑 고모는 지극한 맛의 꽃패를 마루 위에 펼쳐 보이시네.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오는 길,

교통방송이 전하는 지혜의 말씀,

고향 가는 길은 돌아가는 길이 없습니다,

직진, 오로지 직진입니다.

엄마랑 나, 직진으로 경부선 타다

판교 인터체인지에서 분당으로 빠지는데,

이것은 영락없는 실향의 길이라,

남편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할아버지도 없고,

할머니도 없는, 실향의 나라로, 엄마랑 나는 뛰뛰빵빵 뛰뛰빵빵,

오늘도 내일도, 하염없이 달려가네

 

 


 

 

심보선 시인 / 나의 친애하는 단어들에게

 

 

단어들이여,

선량한 전령사여,

너는 내 사랑에게 “저이는 그대를 사랑한다오” 전언해주었고

너는 나에게 “그녀도 자네를 사랑한다네” 귀띔해주었지.

그리고 너는 깔깔거리며

구름 위인지 발바닥 아래인지로 사라졌지.

사랑하는 이의 웃음소리를 졸졸 따라다니며

나는 기쁨에 겨운 생을 살았지.

 

단어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이여,

그 아들과 딸의 이름이여,

너는 태어나자마자 어찌나 빨리 늙어가던지,

너를 보면 곧바로 묘비 위의 이름을 알아채게 되지.

사랑하는 이들의 사그라지는 이름을 읊조리며

나는 슬픔에 겨운 생을 살았지.

 

단어들이여,

내가 그늘을 지나칠 때마다 줍는 어둠 부스러기들이여,

언젠가 나는 평생 모은 그림자 조각들을 반죽해서

커다란 단어 하나를 만들리.

기쁨과 슬픔 사이의 빈 공간에

딱 들어맞는 단어 하나를.

 

나의 오랜 벗들이여,

하지만 나는 오늘 밤 지상에서 가장 과묵한 단어,

미안하지만 나는 그대들에게서 잠시 멀어지고 싶구나.

나는 이제 잠자리에 누워

내일을 위한 중요한 질문 하나를 구상하리.

영혼을 들어 올리는 손잡이라 불리는

마지막 단어만이 입맞춤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로 끝나는 질문 하나를.

 

 


 

 

심보선 시인 / 예술가들

 

 

우리는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똑같이 견디진 않아요.

방구석에 번지는 고요의 넓이.

쪽창으로 들어온 별의 길이.

각자 알아서 회복하는 병가의 나날들.

 

우리에게 세습된 건 재산이 아니라

오로지 빛과 어둠뿐이에요.

둘의 비례가 우리의 재능이자 개성이고요.

 

우리에게도 공통점이 있죠.

죽고 싶은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요절할 테지만

정작 죽음이 우리를 선택할 땐

그런 순간들은 이미 지나친 다음이죠.

 

버스 노선에 없는 정류장에 내려서

주변을 둘러볼 때의 어리둥절함.

그게 우리가 죽는 방식이라니까요.

보험도 보상도 없이 말이에요.

 

사랑? 그래, 사랑이요.

 

우리는 되도록 아니 절대적으로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해요.

검은 수사학, 재기 어린 저주, 기괴한 점괘.

우리가 배운 직업적 기술이 사랑에 적용된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지 않나요?

 

옛날 옛적 어느 선배가 충고했죠.

그대들이 만에 하나 사랑에 빠진다면

동백꽃이 지는 계절에 그러하길.

그것은 충분히 무겁고 긴 시간이라네.

 

간혹 우리 중 누군가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들려요.

그러곤 아주 끔찍한 일이 생겼다는 뒷이야기도요.

우리의 사랑은 사내연애 따위에 비할 수 없어요.

버스 종점에 쭈그리고 앉아 영원히 흐느끼는 이.

이별을 하면 돌아갈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이.

그 사람이 버림받은 우리의 처량한 동료랍니다.

노동? 그래, 노동이요.

 

마지막 파업 때 끝까지 싸운 이는

노조 간부가 아니라 연극반원이었다네요.

그가 경찰에게 몽둥이로 얻어터질 때

세 명의 피 흘리는 인간이 나타났다네요.

그중에 겨우 살아남은 이는 조합원이고 죽은 이는 햄릿이고

가장 멀쩡한 이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조차

못 외우는 초짜 배우였다네요.

 

남들이 기운차게 H빔을 들어 올릴 땐

저만치서 뒷짐을 지고 콧노래나 흥얼거리지만

우리는 사실 타고난 손재주꾼이랍니다.

공장 곳곳에 버려진 쇳조각과 페인트로

불발의 꽃봉오리, 반기념비적인 바리케이드,

죽은 동지들의 잿빛 초상화를 담당하는 건 언제나 우리 몫이죠.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 사이

이를테면 시대와 작업대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서 길을 잇고 길을 잃어요.

고통에서 벗어나는 건 고통의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뭔가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거라고요.

우리는 벤담의 공장에서 자발적으로 해고됐다고요.

 

우리는 이력서에

특기는 돌발적 충동

경력은 끝없는 욕망

성격은 불안장애라고 쓰고

그것을 면접관 앞에서 깃발처럼 흔들어요.

그리고 제 발로 문을 박차고 걸어 나오는 거에요.

의기양양하게 그리고 지독히 외롭게.

 

우리의 직업 정신은 뭐랄까.

살고 싶다고 할까. 죽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조금 유식하게 해방이라고 할까.

네, 압니다. 알고말고요.

우리가 불면에 시달리며 쓴

일기와 유서는 지나치게 극적이라는 것을.

생존? 그래, 생존이요.

 

언제부턴가 우리의 직업은 소멸하고 있어요.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대체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는지.

모든 공문서에서 우리의 이름 위엔 붉은 X자가 쳐져요.

 

기억? 그래, 기억이요.

 

나는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심보선 시인 /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명상

 

 

내 육체 속에서는 무언가 가끔씩 덜그럭거리는데

그것은 가끔씩 덜그럭거리는 무언가가 내 육체 속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욕조 속에 몸을 담그고 장모님이 한국에서 보내온 황지우의 시집을 읽었다

시집 속지에는 '모국어를 그리워하고있을 시인 사위에게'라고 씌어 있었다

(장모님이 나를 꽤나 진지한 태도의 시인으로 오해하는 것이 사실은 부담스럽다)

문득 무중력 상태에서 시를 읽는 기분이 어떨까, 궁금해져

욕조 물속에 시집을 넣고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그렇게 스무드할 수 없었다

어떤 시구들은 뽀골뽀골 물거품으로 올라와 수면 위에서 지독한 냄새를 터뜨리기도 했다

 

욕조에서 나와 목욕 가운을 걸치며 나는 생각했다

정말 이 안에 아무것도 안 입어도 되는 것일까?

도덕적으로 그리고 미적으로 그래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현 자본주의의 존재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오랫동안 미루어왔다 아니, 사실은

그런 질문을 애초에 던지기라도 한 것인가?

 

머리를 드라이어로 말리고 있는데

사회운동가인 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마찬가지로 사회운동가인 애인 레슬러 집에서 동거 중이다

오늘 밤에 자기네 집에서 식사나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그가 나를 한국에서 온 좌파 급진주의자로 오해하는 것이 사실은 부담스럽다)

네 시인데 방 안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주관적 조건과 객관적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혁명이 일어나듯이

블라인드의 각도를 태양 빛의 입사각에 정확하게 맞출 때

이 방은 제일 밝다, 그러나 그런 일은/ 나 같이 게으른 인간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학 다닐 때, 데모 한번 한 적 없는 아내는 의외로 나의 좌파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

심지어는 오늘 또 다른 사회운동가 아라파트도 오는 거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지난 대선 때 민중 후보를 찍었다)

지난번 우리 집에서 (위 섈 오버컴)을 다 함께 합창할 때도

아내는 옆에서 녹차를 따르며 잠자코 웃기만 했다

아내는 그러나 이혼을 의식화시키는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그럴듯한 열매 한번 못 맺는 나쁜 품종의 식물, 나를 가꾸며 삼 년 동안 잘 버텨왔다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들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 목욕 가운을 활짝 펼쳐 보이고 싶었으나

나는 그런 짓이 도덕적으로나 미적으로나 용납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블라인드의 각도를 고치며 아내는 투덜거렸다

더 밟은 곳으로 이사 가고 싶어

하지만 집세를 생각해야 할 것 아냐, 그리고 당신,

내가 한 질문에 먼저 대답이나 하란 말이냐!

그러나 내가 어떤 질문을 아내에게 한 것인가? 질문을 과연 하기나 한 것인가?

를 난 기억할 수 없었다, 기억하려 애쓰는 동안

태양 빛이 블라인드의 각도를 심각한 수준 이상으로 초월하였으므로

방은 속수무책 어두워져갔고 이내 모든 것이 암흑속에 잠겨버렸다

 

암흑 속에서 무언가 가끔씩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가끔씩 덜그럭거리는 무언가가 암흑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내가 깨어난 것은 놀랍게도 깜박이는 불이

2ㅡ>1로 진행 중인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레슬리 집에 와인이라도 한 병 사가야 되는 것 아니냐, 도대체

무슨 생각에 그리 깊이 빠져 있는 것이냐고 묻는

옆의 아내가 오늘따라 무척 예뻐보였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목욕 가운 펼쳐지듯 활짝 열려,

또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길을

 

 


 

심보선 시인

1970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및 同 대학원, 컬럼비아 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졸업.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풍경〉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눈앞에 없는 사람』 『오늘은 잘 모르겠어』. 2011년 제4회 시인광장 시문학상과 동년 제11회 노작문학상 수상. 현재〈21세기 전망〉 동인.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