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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11월 3일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

by 파스칼바이런 2011. 10. 31.

축일 11월 3일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

 

San Martino de Porres Domenicano

ST.MARTIN de Porres

Martino = dedicato a Marte

사회 정의의 수호성인. 흑인의 성자.

 

 

’빗자루 수사’, ’흑인의 성자’라고 하는 마르티노는 1579년 페루에서 스페인 귀족의 서자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색인의 설움을 겪었던 마르티노 성인은 이발사 겸 외과의사의 견습생이 되었고, 그 후 도미니코회 재속 제3회원으로서 수도복을 입었고, 다시 리마의 도미니코회인 로사리오 수도회에 정식 입회하여 평수사가 되었다.

평수사인 마르띠노는 이발사, 외과의사, 의류수선 등의 여러 직책을 담당했지만 아무런 무리 없이 일을 했으며, 병자 치료를 도시 주민에게까지 확대하였고, 또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소외된 이들, 병자와 노예, 고아들, 심지어는 벌레나 동물까지도 사랑했던 그는 수많은 기적들과 함께, 하느님 앞에는 흑인이나 어린이나 모두가 평등함을 깊은 신앙과 겸손한 삶으로 실천했다. 어느 날은 그의 원장이 빚에 몰려 곤경에 처한 사실이 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저 가련한 종이고, 수도원의 재산이니, 저를 파십시오."

그는 참으로 겸손하고도 엄격한 생활을 영위했고 성체에 대해 큰 신심을 지녔다.

 

그는 리마의 성녀 로사와 가까운 친구였고, 성 요한 마시아스와도 가까웠다.

그는 외국 선교사가 되어 순교하기를 열망했으나, 자기 육체에 대한 순교로써 만족해야 했다. 그는 일개 평수사에 불과했으나 1639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장례식에는 고위 성직자와 귀족들이 그를 운구했다. 1962년에 시성되었으며, 사회 정의의 수호성인이다.

 

’아버지를 모르는’이라는 말은 영세 문서에서 냉혹한 법적 문구가 된다.

’혼혈아’나 ’전쟁의 유산’이란 말도 ’순수한’혈통의 사람들에 의해서 잔인하게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마르티노도 냉혹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천대받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돈과 마음까지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흑인이지만 인디언 혈통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파나마의 해방된 여자 노예와 페루 리마의 스페인 귀족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과 검은 피부를 물려받았다. 이것은 그이 아버지에게는 큰 불만이었지만 결국 8년 뒤에 자기 아들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여동생이 태어나자 가정을 버렸기 때문에 마르티노는 가난 속에서 컸으며 리마 사회의 하류층에 빠져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12세에 그에게 외상 치료사와 이발사 교습을 받게 했다.

그는 머리 깎는 법과 지혈법(그 당시에는 기본적인 의학 처방이었다.)을 배우고 의술도 익혀서 부상자를 돌보고 치료했다. 이러한 의료업에 몇 년간 종사하다가 그는 ’평신도 보조원’으로 도미니코회에 들어갔으나 자신은 수도자가 될 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9년후에 공동체가 그의 기도와 참회, 애덕과 겸손에 의해 그가 완전한 수도서원을 할 수 있도록 청원하게 되었다. 수많은 밤을 기도와 참회 생활로 보냈다. 낮에는 병자를 치료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로 보냈다.

 

그는 모든 사람을 피부 색깔이나 인종, 신분에 관계없이 대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는 고아원을 설립하는 데 큰 힘이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을 돌보았으며, 매일 수도원에서 베푸는 자선을 실제적이고 능률적으로 처리해 나갔다.

그는 수도원을 위해서든 시를 위해서든 그것이 담요나 내의, 초, 사탕, 기적 또는 기도’의 문제라면 언제나 대리인이 되었다. 그의 수도원이 빚을 지게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련한 혼혈아일 뿐입니다.  나를 팔으시오. 나는 수도원의 재산입니다. 나를 팔으시오."

 

마르티노가 부엌에서, 세탁실에서, 병원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는데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그의 생활을 놀라운 선물로 채워 주셨다.

그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탈혼 상태, 그가 기도하는 방을 가득 채우는 빛,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것, 놀라운 지식, 순간적인 병의 완쾌, 동물들을 뛰어나게 다루는 솜씨 등이 그것이다.

 

그의 애덕은 들짐승들이나 부엌의 벌레들에게까지도 미쳤다.

그는 마당에 쥐나 생쥐가 들어오는 것은 그들이 제대로 못 먹어서 그렇다고 변명했고, 자기 여동생의 집에서는 길 잃은 개와 고양이들까지 보호하기도 했다.

그는 뛰어난 모금가로서 가난한 처녀들이 결혼을 하든가, 수녀원에 들어갈 때 지참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수천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다.

 

그의 동료 수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영적 지도자로 여겼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언제나 ’불쌍한 노예’라고 불렀다.

그는 페루에서 또 한 사람의 도미니코회 성인인 리마의 로사와는 사이좋은 친구였다.

 

인종 차별은 거의 아무도 공개하지 않는 죄이다.

그것은 공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지만 겉보기로는 아무의 잘못도 아닌 ’세상의 죄’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용서의 수호자(차별 대우를 받는 사람들의 편에서와 그리스도교적 정의로 인종 차별을 개혁하는 사람들의 편에서)로 마르티노 데 포레스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1962년 5월 6일 교황 요한 23세는 마르티노의 시성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훨씬 더 엄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장 쓰라린 모욕까지도 용서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으로 죄인을 속량하려고 애썼다. 그는 사람으로 병자들을 위로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과 의약품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농장의 노동자들과 흑인들 그리고 그 당시 노예와 비슷하게 간주되던 혼혈아들을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애덕의 마르티노’ 라고 붙여준 이름으로 마땅히 불릴 만하다,"

 

-성 바오로수도회홈에서-

 


 

생애(生涯)

 

마르틴 데 포레스는 페루 리마에서, 스페인 귀족과 파나마 출신의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검은 피부를 물려받은 그는 귀족인 아버지로부터 멸시받았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가정을 버렸기 때문에, 마르틴은 가난 속에서 컸으며 리마 사회의 하류층 생활을 했지만 그의 검은 얼굴에는 항상 사랑과 자비가 넘쳐흘렀다.

 

마르틴의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관대함과 하느님에 대한 신앙, 겸손,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의 봉사에 감명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12세에 그에게 외상 치료사와 이발사의 교습을 받게 했다.

그는 머리 깎는 법과 지혈법을 배우고 의술도 익혀서 부상자를 돌보고 치료했다.

그 당시 마르틴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산·라자로 성당의 미사에 참여 하였다.

 

그는 자기가 흑인의 아들이기 때문에 부자인 백인들은 별로 자기에게 관심이 없겠지만

하느님만은 자기를 사랑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느님은 그와 모든 흑인들을 사랑해서 한 사람, 한사람에게 불멸의 혼을 주셨다.

이 혼은 지금이야 검은 육체 속에서 잠자고 있으나 언젠가는 부정이 없는 날이 올 것이고,

천국에서는 피부의 색깔 같은 것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부자냐, 가난뱅이이냐, 영리하냐, 둔하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천국에서, 값어치있는 것은 세상에서 할 일을 제대로 했고, 충실하게 하느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말을 실천했느냐 하는 것뿐이다."

 

아침마다 산·라자로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사제가 주관하는 미사에 참여하면서, 마르틴은 곰곰이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대한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

누구의 몸 안에도 하느님을 본뜬 혼이 있으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그분의 뜻이 아닐까? 만일 내가 사람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면, 나는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걸거야!" 마르틴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가 태어났다는 것은 얼마나 기뻐해야 할 일인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천국에서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 기회가 있으니, 이 얼마나 기뻐해야 할 일인가, 그런데 이 길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극히 적으니, 이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마르틴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가 15세가 되었을 때 리마에 있는 도미니꼬 수도원에 자기 자신을 바치리라고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이 바라시는 것이라고 그는 확신하였다.

자기가 태어난 것은 완전히 이것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사제도 노동수사도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수도원의 심부름꾼이 되려고 생각했다. 자기를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이 일은 하찮은 것이리라. 마르틴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주님은 그 자신을 나에게 내주셨다. 나도 나 자신을 주님께 바치리라.

주님! 지친 사람, 병든 사람, 불행한 사람을 제가 돕도록 해주세요.

주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를, 저를 도구로 쓰셔서 그들이 알게 해주십시오."

 

그는 평신도 보조원으로 수도원에 들어갔고 성 도미니꼬의 겸손을 본받으려고 노력했으며, 9년 후, 수도 공동체는 그의 기도와 참회, 애덕과 겸손에 의하여 그가 완전한 수도서원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는 이것이 자신에게 너무 큰 영예라고 생각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봉사하였다. 또한 그는 모든 사람을 피부색깔이나 인종, 신분에 관계없이 대했고, 고아원을 설립하는데 큰 힘이 되었으며,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을 돌보았고, 매일 수도원에서 베푸는 자선을 실제적이고 능률적으로 처리해 나갔다.

 

마르틴의 수술과 치료기술에 대한 소문도 곧 널리 퍼졌다.

의학 지식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도 그는 지극히 무서운 병도 낫게 했다.

마르티노가 부엌에서, 세탁실에서, 병원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는데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그의 생활을 놀라운 선물로 채워 주셨다.

그를 공중에 들어 올리는 탈혼 상태, 그가 기도하는 방을 가득 채우는 빛,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것, 놀라운 지식, 순간적인 병의 완쾌, 동물들을 뛰어나게 다루는 솜씨, 자신과 하느님만이 아는 방법으로 잠긴 문을 통과하는 것 등 수많은 은사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

 

이런 일들과 다른 많은 기적들 때문에, 마르틴은 그가 살아있을 때에도 성인이라고 불리웠으며, 오늘날까지 기적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거의 끊임없는 기도의 삶을 살았으며, 믿을 수 없는 고행을 했다.

그는 한 순간도 하느님과 일치를 잃지 않으면서 힘들고 보잘 것 없는 일들을 했다.

그의 자비와 겸손과 순명은 특출한 것이었다. .

 

그의 애덕은 들짐승들이나 부엌의 벌레들에게까지도 미쳤다. 그는 마당에 쥐나 생쥐가 들어오는 것은 그들이 제대로 못 먹어서 그렇다고 변명했고, 자기 여동생의 집에서는 길 잃은 개와 고양이들까지 보호하기도 했다.

소외된 이들, 병자와 노예, 고아들, 심지어는 벌레나 동물까지도 사랑했던 그는 수많은 기적들과 함께, 하느님 앞에는 흑인이나 어린이나 모두가 평등함을 깊은 신앙과 겸손한 삶으로 실천했다.

 

그는 수도원을 위해서든 시를 위해서든 그것이 담요나 내의, 초, 사탕, 기적 또는 기도’의 문제라면 언제나 대리인이 되었다.

그의 수도원이 빚을 지게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련한 혼혈아일 뿐입니다. 나를 팔으시오. 나는 수도원의 재산입니다. 나를 팔으시오."

 

그는 뛰어난 모금가로서 가난한 처녀들이 결혼을 하든가, 수녀원에 들어갈 때 지참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수천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다.

그의 동료 수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영적 지도자로 여겼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언제나 ’불쌍한 노예’라고 불렀다. 그는 페루에서 또 한 사람의 도미니코회 성인인 리마의 로사와는 사이좋은 친구였다.

 

성 마르틴 데 포레스는 신대륙의 첫 흑인 성인이고 축일은 11월 3일이다.

그는 외국 선교사가 되어 순교하기를 열망했으나, 자기 육체에 대한 순교로써 만족해야 했다. 그는 1639년에 선종하였고 1962년 5월 6일 교황 요한 23세는 마르틴 데 포레스를 시성하였으며, 사회 정의의 수호성인이다

 

사상(思想)

 

그의 사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의 겸손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불타는 사랑과 봉사이다."

그는 가난의 서약에 대한 해석으로, 가난한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봉사를 지적하였다.

아래의 일화는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다시 말해서 그의 가치관과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날, 마르틴이 병든 인디언을 자기 방에 데려 온 것을 보고, 이것을 수도회의 한 수도자가 비난하고 불순종에 대하여 꾸짖었다. 마르틴은 그의 비난을 받아들인 후, "순종이 자비보다 앞서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대답했다.

또한 어느 날, 자기 방에 아주 더러운 거지를 데리고 들어온 것에 대하여 비난을 받게 되었을 때, 마르틴은 "자비심이 깨끗함보다 더욱 훌륭하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어떤 심한 모욕을 받았을 때에도 심지어 수도회의 형제들에게서 모욕을 받았을지라도, 그 형제들에 대한 강한 존경심을 보여 주었다.』

 

가난하고 겸손한 성자 마르띠노 데 뽀레스 수사를 하늘의 영광에로 이끄신 하느님, 저희들도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그의 빛나는 모범을 따르고, 하늘나라에서도 그와 함께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요환 23세 교황이 성 마르띠노 데 포레스의 시성식에서 한 강론에서

(Die 6 maii 1962: AAS 54[1962], 306-309)

 

자비의 사람 마르띠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다."

성 마르띠노는 자기 생활의 모범으로 우리가 이 사랑의 길을 통하여 구원과 거룩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당신 몸에 우리 죄를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알고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 대한 심원한 사랑으로 이끌리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당하신 잔혹한 고초를 바라볼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한 각별한 사랑으로 지극히 높으신 성체를 공경하여 성당 감실 앞에서 조배하는 데 장시간을 보냈고, 열렬한 마음으로 이 영혼의 양식을 영하고자 했습니다.

 

성 마르띠노는 또 거룩하신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부패되지 않은 신앙과 겸손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극진한 애정으로 자기 형제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와 자기의 형제로서 대하고 겸손에 넘치는 마음으로 다른 모든 이들을 자기보다 의롭고 어진 사람들로 여기어 그들을 자기보다 더 많이 사랑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잘못을 변호해 주고, 자기가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보다 더 큰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고 확신한 나머지 참기 지극히 어려운 모욕까지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죄인들을 회개에로 이끌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병자들을 성심껏 간호해 주었으며, 극빈자들에게 양식과 의류와 약품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거의 노예처럼 취급받던 농부들과 흑인들 그리고 혼혈인들을 자기 능력이 미치는 한도까지 돌보아 주고 그들에게 온갖 도움과 친절을 베풀어 주었으므로 마침내 백성들로부터 "자비의 사람 마르띠노"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말과 표양과 덕행으로 사람들을 신앙에로 그렇게도 힘있게 이끈 이 거룩한 사람은 아직도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마음을 천국에로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높고도 거룩한 것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영광으로 여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악의 유혹에 끌려가 이러한 덕행들을 멸시하거나 싫어하고 소홀히 하기까지 합니다.

성 마르띠노의 모범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의 거룩한 계명을 지킴이 얼마나 즐겁고 복된 것인지 많은 이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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