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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4월23일 성 제오르지오 순교자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4.
[이콘] 성 제오르지오(George).

축일  4월23일 성 제오르지오 순교자

 

ST. GEORGE

St. Georgius,Martyr

San Giorgio Martire di Lydda

 

 

성 제오르지오는 4세기부터 팔레스티나의 디오스폴리스에서 공경을 받아 왔고 그 곳에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의 축일을 초세기 부터 동방과 서방에서 두루 지내게 되었다.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는 영국, 포르투갈, 독일,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특히 베네치아(Venezia)와 페라라(Ferrara)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으며, 군인과 보이 스카우트의 수호자이고 동방 교회에서 ‘위대한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 성인이다.

그러나 성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그가 콘스탄틴 대제 이전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디오스폴리스(Diospolis)라고도 불리던 리다(Lydda)에서 순교하였다는 것과 황제 근위대의 군인이었다는 것뿐이다.

 

그 외에는 6세기경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신화와 전설들이 전해지고 있다.

성인에 관한 이야기로 유명한 것이 “황금 성인전”(Legenda Aurea)에 언급된 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인이 어느 나라를 지나다가 어떤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은 용의 제물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나라는 계속 어린 양을 용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양들이 다 바닥나자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돌아가면서 딸들을 바치다가 공주의 순서가 되자 그 하녀가 대신 제물이 되기로 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성인은 하녀와 함께 기다리다가 용이 나타나자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용을 붙잡았다.

이때 성인이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다면 용을 죽이겠다고 하자 왕과 백성들이 동의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창으로 용을 찔러 죽였고 왕을 비롯한 15,000명이 세례를 받았다.

 

성인은 왕국의 반을 주겠다는 왕의 제안을 거절하고, 하느님의 교회들을 잘 돌보고 성직자들을 존경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돌보아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그 나라를 떠났다고 한다.

 

7-8세기에 영국에 알려진 성인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영국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중세 이후에는 기사도와 군인들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성인의 문장은 흰 바탕의 붉은 십자가인데, 현재 영국 해군에서 사용하는 기장이 바로 하얀 바탕에 붉은 색으로 커다란 성게오르기우스의 십자가가 그려진 모양이며, 이는 영국 국기(유니언 잭) 도안의 일부이기도 하다.

 


 

 

 

성 베드로 다미아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3, De Sancto Georgio: PL 567-571)

 

그는 십자가의 깃발로 완전히 방비되었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 오늘 이 축일은 파스카 영광의 기쁨을 반영해 주고 금에 박혀 있는 귀한 보석이 그 아름다운 광채로 금을 빛나게 하듯 해줍니다.

성 제오르지오는 확실히 한 군직에서 다른 군직으로 옮겨 가서, 세속의 군직을 내던지고 그리스도 군대의 반열에 가담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군직에서 영민한 군사처럼 살았습니다.

우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 버림으로써 세속 재물의 부담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아무런 장애도 받음이 없이 믿음의 갑옷을 입은 그리스도의 용감한 군사로서 치열한 투쟁 속으로 전진해 들어갔습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한 가지 명백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즉 누구든지 세속 재물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신앙을 위해서 용감하게 또 합당히 싸울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성 제오르지오는 성령의 불로 타오르고 십자가의 깃발로 완전히 방비되어 사악한 왕과 싸웠고, 마귀의 사자인 이 왕을 패배시킴으로써 바로 죄의 원흉을 패배시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용감히 싸우도록 고취시켰습니다.

 

 

확실히 그 전투 가운데 지극히 높으시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심판관께서 그의 곁에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자유의지로써 악인의 손이 그 포악성을 성 제오르지오에게 마저 뻗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순교자의 육신을 살인자들에게 넘겨주셨지만 패배될 수 없는 신앙의 보루로 방어된 그 영혼을 당신의 중단 없는 보호로써 지켜 주셨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 천상 군대에 속한 이 군사를 보고 경탄하는 데 그치면 안 됩니다.

그를 또한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정신을 천상 영광의 상급에까지 들어 높이고 우리 마음을 거기에다 고정시킨다면 세속이 우리에게 유혹의 미소를 던지든 불행으로 우리를 위협하든 간에 세속은 거기에서 우리를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때가 될 때 우리의 정신이 향해 있는 축복의 그 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성 바오로의 권고에 따라 육신과 영혼의 온갖 불결에서 우리 자신을 정화합시다.

그리스도의 성전인 교회에서 자신을 희생으로 바치고자 하는 사람은 거룩한 샘에서 씻음 받은후 "너의 사제들은 정의를 입어라."는 시편의 말씀처럼 여러 가지 덕을 입어야 합니다.

 

즉 세례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부패의 낡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되며,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순수하고 거룩한 새로운 형태의 삶으로써 새사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옛 죄악의 오점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삶이 지니는 광채로 빛나게 되며 파스카 신비를 합당히 경축하고 복된 순교자들의 모범을 실제로 본받게 될 것입니다.

 

(가톨릭홈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오해의 희생자라고 한다면 제오르지오는 엄청난 양의 상상력을 일으키는 대상이다.

그가 아마도 콘스탄틴 황제 시대 전에 팔레스티나의 리다에서 죽은 실제 순교자라는 것은 충분히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

교회는 그의 전기를 전해 주고 있지만 그의 생애를 둘러싼 전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최고의 가치를 치르고자 했다는 것은 교회가 믿는 바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제오르지오가 용과 싸워서 왕의 딸을 구하고 리비아를 회개시켰다는 것은 12세기 이탈리아의 우화이다.

제오르지오는 일찍이 동방의 군인들만큼이나 십자군들이 존경하던 수호성인이다.

그는 영국, 포루투칼, 독일, 아라곤, 제노바, 베니스의 수호성인이다.

 

인간 본성은 단순하고 냉정한 역사의 자료만으로는 만족 할 수 없는 것 같다.

미국인들에게는 위싱턴과 링컨이 있지만 여하튼 폴 번양 (Paul Bunyan: 미국 서북부의 산림 벌채 지방에 전해 오는 전설 속의 목재 벌채인도 필요로 한다.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의 생애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지만 수세기 동안 이탈리아인들은 '피오레티’에서도 그의 정신을 찾았다.

산타클로스는 성니콜라오의 정신이 대중화된 것이다.

사실과 전설이 모두 거룩하신 분에 대한 신비스런 진리를 밝혀 주는 인간적인 방법들이다.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른 분들의 생활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국가를 찾으려는 충격의 새로운 동기를 발견하게 된다."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50항)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초대 교회에는 로마의 군인 중에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생겨 순교한 이도 적지 않았다.

이와 같이 군인이 입교하기 쉬웠던 것은 아마 엄격한 군기에 익숙된 몸으로서는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또한 언제 어느 때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칠지 모르는 처지로서는 천국에 대한 관념이 커다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여하튼 성 제오르지오도 역시 그러한 로마 제국의 용감한 군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옛적부터 교회의 영광스러운 순교자 중에 끼어 있어 동방 정교회에 있어서는 더욱 더 존경을 받으며 대순교자라고까지 부름을 받고 있다.

 

그에게 봉헌된 성당은 이미 5,6세기경부터 건립되어 십자군 시대에는 영국의 사자왕(獅子王)  리챠드 1세가 그를 휘하 군대의 보호자로 삼은 이해 일반 군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이 성인은 280년경에 소아시아의 가파도니아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에 군대에 들어가서 디오클레시아노 황제의 총애를 얻어 장교에까지 승진했으나, 그리스도교의 박해가 일어났을 때 황제 앞에 대령해 주저함이 없이 신앙의 귀중함을 논하고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신 참된 하느님을 신봉하며 자신의 영혼 구원을 도모할 것을 권유했으므로 대노를 사게 되었고 배교의 엄명을 받고도 용감히 이를 거절했다.

 

황제는 이 청년 장교의 무용(武勇)과 씩씩함을 아껴 여러 방법으로 설득했으므로 “이제는 그만이다”하고 참수형에 처할 것을 명했다.

이처럼 제오르지오가 용감한 순교의 화관을 얻은 것은 303년의 일이었다.

로마 순교록에는 그를 순교자의 화관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제오르지오의 상본은 보통 몸에 갑주를 두르고 말을 타고 있는 맵시 있는 한 기사(騎士)가 한 마리의 용(龍)을 창으로 찔러 눕히고 있고, 곁에 한 소녀가 서있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용에게 막 희생되려는 소녀를 제오르지오가 구출했다는 전설에서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용맹한 군사인 그의 힘으로 말미암아 용과 같은 마귀의 독아(毒牙)에서 소녀로 상징된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대구대교구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