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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

by 파스칼바이런 2012. 1. 1.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

   

 

세상의 모든 죄가 다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교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아담과 하와의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한 마음 때문에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그들을 유혹했던 사탄 또한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똑 같은 죄로 대천사였다가 영원한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겸손으로 시작되지 않는 덕도 없고, 교만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 죄도 없습니다.

 

2년 전에 공부도중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몇몇 젊은 신부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첫 본당을 맡은 신부들이었는데 신학교 때 보았던 풋풋한 모습들은 온데간데없고 뭐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본당 주임신부 특유의 권위가 풀풀 풍겨 나오는 말과 행동을 금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본당신부가 되면 가장 우선적으로 겸손한 신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이번 주일에 보좌 주교님께서 미사를 봉헌하러 저희 성당을 방문하셨습니다.

제가 첫 주임으로 본당에 나왔기에 잘 지내는지 방문을 나오신 것입니다.

주교님은 본당 신부를 딱 한 번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저희 본당입니다.

그래서 10년 만에 다시 오신 주교님도 매우 기뻐하시는 눈치였고, 신자들 또한 주교님을 반가이 맞이하는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문제는 미사 때 발생했는데, 제가 복음을 읽고 주교님께서 강론을 하러 독경대로 가셔서 강론을 하실 때 저는 돌아와서 제 자리에 앉았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주교님의 강론을 듣던 중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주례석에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있던 주례사제석에 주교님께서 오셔서 주례를 하시는데도 아무생각 없이 제가 앉아버렸던 것입니다.

마치 교만한 자아가 자신 안에 마련된 하느님 자리에 앉아 하느님께서 마땅히 들어와 주인이 되어야 할 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똑같은 모습을 제가 보인 것입니다.

정말 아무리 주위를 해도 어디서 솟아나올지 모르는 나의 교만, 이제는 주위 하는 것을 넘어서서 두려워해야 할 것임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요한 사도는 자신의 편지에서 ‘사랑엔 두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당연히 두려워할 것이 없어야합니다.

그런데 하와는 사탄 앞에서까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바라보고 그와 대화하고 급기야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고 두려워하십니다.

두려워하시는 이유는 사랑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가브리엘 천사가 당신을 유혹하는 천사의 모습을 띠고 있는 마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영성의 대가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무조건 마귀로 여기고 침을 뱉으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실 수 없다는 겸손함에 예수님이라면 침을 맞아도 기뻐하실 것이고, 마귀라면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하와처럼 자신에게 나타난 이를 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겸손하게 대처하신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이런 말로 안심시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마리아님. 당신은 하느님 곁에서 은총을 발견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기 위해 하느님을 잊었고, 결국 하느님께서 “사람아, 사람아, 너 어디에 있느냐?”하며 그들을 찾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게 되고 하늘나라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 곁에서 그 잃었던 은총을 받고 계신다는 말은 성모님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라면 하와에게 한 것처럼 하느님께서 주어야 할 은총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하며 불만족스럽게 하여 하느님을 원망하게 만들 것이고 그래야만 그 불만족을 채우기 위해 죄를 짓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족시키고 감사하게 하고 찬미하게 하는 것은 절대로 악으로부터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제사는 감사의 봉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못된 소작인들처럼 하느님께 감사의 제물을 봉헌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들까지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도 만족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서 매일 성체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자신 안에서 그 만족하지 않는 만큼씩 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 가지는 두려워합시다.

바로 죄 짓는 것이고 그 죄가 비롯되는 시작인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교만은 불만족을 낳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모든 죄가 시작됩니다.

조심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성모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혹시 나를 교만하게 하여 항상 감사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따르지 않게 만드는 것이 주위에 없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살핍시다.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오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