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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2월 22일 성녀 마르가리타(Margaret)

by 파스칼바이런 2012. 6. 7.

축일 2월 22일 성녀 마르가리타(Margaret)

신분: 3회원

활동지역: 코르토나(Cortona)

활동연도: 1247-1297년

같은이름: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라비아노(Laviano)에서 살던 어느 농부의 딸인데, 7세 때에 훌륭한 어머니를 잃고 계모 밑에서 갖은 학대를 받으며 진정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채 성장하였다.

외모가 뛰어나게 예뻤을 뿐만 아니라 다소 관능적이었던 그녀는 집을 뛰쳐나와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에서 온 어느 기사와 눈이 맞았다.

그는 그녀와 결혼을 약속하고는 9년 동안이나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죄녀의 대명사처럼 불렸고 사람들로부터 천시를 당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자기 옷을 물고 잡아당겨 어느 밤나무 밑에 가 보았다가 무참하게 살해된 자기 애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처참한 모습을 보자마자 하느님의 심판을 절실히 깨닫고 몬테풀치아노를 떠나 회개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어린 아들을 안고 고행복을 입은 채 아버지께로 돌아갔지만 계모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이제 거의 절망 상태에 빠졌을 때, 그녀는 문득 작은 형제회 회원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수도원을 찾아 헤매었으나 찾지 못하던 중 어느 두 부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 그녀는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원이 되고자 하였으나 죄녀라는 이유로 허락을 받지 못하다가, 3년 후인 1227년에 입회가 허락되어 철저한 보속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탄이 그녀의 통회를 방해하며 지난날의 욕정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기도와 고행이 무가치함을 보여주며 실망시키려 들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를 따뜻이 안아 주시어 관상의 은혜와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은총을 주셨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하느님의 권능을 찬미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통회생활을 시작한 지 23년째 되던 해인 1297년 2월 22일에 50세의 나이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작은 형제회의 성녀 막달레나'로 불린다.

그녀의 시체는 코르토나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안장되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유해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고 한다.

그녀는 1728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금주의 성인] 코르토나의 성녀 마르가리타

(St. Margaret of Cortona)

 

속죄의 삶에 사랑의 빛 가득, 남편 잃은 후 이웃 위한 헌신과 봉사, 절제의 삶

1247~1297.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재속 프란치스코회

  

성녀는 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새어머니는 성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성녀를 구박하고 못살게 굴었습니다.

성녀는 무기력한 아버지와 자신을 괴롭히는 새어머니 밑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런 성녀에게 어느 날 멋진 귀족 청년이 나타납니다.

청년은 성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이끌려 성녀에게 잘 대해줬습니다.

성녀는 하루라도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기에 무장적 집을 나와 귀족 청년과 함께 살림을 차렸습니다.

 

성녀는 청년에게 정식으로 결혼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거절당합니다. 하지만 둘은 아들까지 낳고 9년간 함께 살았습니다. 성녀는 마을에서 귀족 청년을 유혹한 여자로 손가락질 받았습니다.

 

어느 날 귀족은 산책 중에 괴한에게 살해당합니다.

성녀는 이에 충격을 받고 귀족과 함께 살던 마을을 떠나 고향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새어머니가 성녀를 받아줄 리 없었습니다.

성녀는 어린 아들과 정처 없이 떠돌다 코르토나 지역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머물게 됩니다.

 

성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불만을 가지고 살아온 지난날을 반성하며, 남은 삶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성녀는 생명을 유지할 최소한의 음식만 먹으며 살았습니다.

고기나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아픈 이들을 찾아다니며 말동무가 돼주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한 성녀는 전보다 더 엄격한 삶을 살았습니다.

성녀는 종종 기도 중에 주님 음성을 듣는 체험도 했습니다.

성녀는 코르토나 전역을 다니며 아프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을 세우는 데 헌신했습니다.

 

성녀는 1297년 성바실리오 성당에서 숨을 거둬 성당 옆에 묻혔습니다.

이후 성녀 무덤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치유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녀는 1728년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평화신문, 2012년 2월 19일, 박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