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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회미술산책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10) 에밀 놀데와 ‘전설 -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

by 파스칼바이런 2014. 6. 10.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10) 에밀 놀데와 ‘전설 -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 - 죽음’

 

참회하는 죄인… ‘성체’로 얻은 평화

 

두 손 모은 채 눈감은 성녀 모습 죽음 의미 새롭게 알려

독특한 표현주의적 화풍, 현대 추상주의 발전에 영향

 

▲ 에밀 놀데.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인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는 현대그리스도교 미술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인물들 중 한명이다. ‘브뤼케’(Die Brűcke), 일명 ‘다리파’로 불리는 표현주의 미술가 모임에 참여한 그는 거칠고 과감한 형태의 변형과 매우 강렬한 색채를 사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아카데믹한 방식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그의 독특한 조형능력은 ‘원시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색채의 폭풍’이라는 찬사를 얻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장승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고, 1913년에는 서울을 직접 방문한 바 있어, 다른 서양화가들과 달리 친근한 느낌이 든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한,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의 생애를 주제로 한 연작 중 한 점을 소개하려 한다. 4월 2일에 기억되는 은수자(隱修者), 이집트의 마리아는 344년경 태어나 421년경 생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예루살렘의 소프로니오스(Sophronios of Jesuralem, †638)가 쓴 「이집트의 마리아 성녀의 생애」에 의하면, 조숙한 말썽꾸러기였던 그녀는 어렸을 적에 집을 나간 후 대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매춘부의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성십자가 현양(顯揚) 축일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자들과 우연히 합류하게 되는데, 함께 여행하는 도중 그 순례자들을 악행에 끌어들이는 죄를 저지르고 만다. 드디어 예루살렘의 성묘(聖廟)성당에 도착하지만, 그녀는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강제로 내몰려쳐져 성당 안으로 한 발도 들여놓을 수 없게 되는 이상하고도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놀라움과 공포심에 떨다,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의 죄 많은 삶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녀는 과거의 잘못을 평생 처음으로 뉘우치며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성당으로 다가가는데, 놀랍게도 이번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고, 성십자가 경배예식에도 참례하게 된다. 이런 극적인 회심사건 후, 요르단 강 건너편 광야로 가서 고행과 보속으로 여생을 지내라는 성모님의 말씀을 따라 그녀는 홀로 은둔과 참회의 길을 걷게 된다.

 

47년이 지난 어느 날, 요르단 강 근처를 지나던 신심 깊은 수도사제 성 조시무스(Zosimus)에게 “신부님 겉옷을 제게 좀 던져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신부님을 뵐 수 있겠습니다”라는 이상한 말이 들려온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몸에 걸칠 옷도 없이 극기의 생활을 하던 성녀 마리아였다. 그녀는 자신의 삶과 뉘우침, 사막에서의 고행과 마침내 얻은 평화를 이야기해주었고, 조시무스는 그녀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해주었다. 1년 후 조시무스가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성녀는 주님의 품으로 떠난 뒤였는데, 이 때 사자의 도움을 받아 매장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그녀의 기이하고 감동적인 삶은 조시무스를 통해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고, 참회하는 죄인,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의 이야기는 많은 수도자들의 모범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또 널리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성녀의 이야기가 성체성사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또 성녀에게 성체를 가져다 준 조시무스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는 사제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의 이미지는 종종 성당의 제단 주위 장식에 사용되었다.

 

 

▲ 에밀 놀데,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죽음’, 1912, 함부르크 미술관.

 

일반적으로 이집트의 마리아는 중성적인 모습으로 표현되며, 나무막대처럼 깡마른 몸을 조시무스 신부에게서 받은 망토로 가리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성체를 배령(拜領)하는 장면이 주로 그려진다. 하지만 에밀 놀데는 전통적인 도상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주의적 화면을 창조해 내었다. 대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 즉 사실적인 형태나 색채보다는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과 반응을 나타내고자하는 그의 표현주의적 방식은 현대 추상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두 손을 가슴에 꼭 그러모은 채 눈을 감은 성녀의 모습은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과 묘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조수정 교수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수정(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