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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회미술산책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13) 제이콥 엡스타인과 ‘야곱과 천사’

by 파스칼바이런 2014. 7. 9.
[현대 그리스도교미술 산책] 제이콥 엡스타인과 ‘야곱과 천사’ (13)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13) 제이콥 엡스타인과

‘야곱과 천사’


천사에 몸 맡긴 야곱… 축복은 ‘버리는 순간’에…

 

 

창세기 내용 중 천사와 싸우는 야곱 이야기에서 영감

성경의 ‘죽을 만큼 싸워 축복 얻은’ 상황과 판이하게 달라

원석의 자연무늬 최대한 이용, 인물들 간 ‘힘’ 대결 흔적 표현

 

 

▲ 제이콥 엡스타인

 

제이콥 엡스타인(Sir Jacob Epstein, 1880~1959)의 대표작 중 하나는 특이하게도 프랑스 파리, 유명 인사들의 공동묘지인 페르 라셰즈(Père Lachaise)에서 만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아일랜드 출신의 소설가, 극작가, 비평가였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묘비 조각을 제작한 이가 엡스타인이었다.

 

그 는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국적을 취득한 유대인 조각가로서 파리 에콜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와 아카데미 줄리앙(Académie Juliana)에서 수학했다. 이미 파리에서 피카소(Picasso), 모딜리아니(Modigliani), 브랑쿠시(Brancusi) 등의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현대 미술에 대해 고민했던 그는 이후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 아방가르드 작가에 합류함으로써 영국 현대 조각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 거칠고 양감이 느껴지는 브론즈와 돌을 자주 사용했던 그는 당시 유럽 아카데미가 추구하던 고전적 양식을 버리고 태평양의 섬들과 서아프리카, 인도 등에서 볼 수 있는 원시미술에 영감을 받았고 기계주의 미학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의 모더니스트 기질은 다수의 종교적 인물상들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났다. 런던 카벤디쉬 광장(Cavendish Square)의 <성모자>와 옥스퍼드 뉴 컬리지 채플(New College Chapel)의 <라자로>, 코번트리 대성당(Coventry Cathedral)의 <에케 호모>와 <대천사 미카엘>등은 이러한 예를 보여준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이 지닌 의미는 크다. 유대인으로 ‘야곱(Jacob)’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엡스타인에게 ‘야곱과 천사’의 주제는 흥미 이상의 것이었다.

 

창세기(32장 23절-33절)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 주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이 먼저 그의 가족과 종들에게 야뽁 건널목을 건너게 한 뒤, 혼자 남아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알 수 없는 사람(천사, 하느님)과 동이 틀 때까지 씨름했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결과 그로부터 축복을 받게 됐다.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고갱(Gauguin)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수의 작가들도 천사와 싸우는 야곱을 묘사한 그림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조각 작품에서 이 주제를 찾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야곱과 천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천사와 싸우는 야곱’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지만 엡스타인은 두 인물의 조각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상황을 연출한 형상을 재현했다.

 

▲ ‘야곱과 천사 Jacob and the Angel’, 1940~41, 알라바스터(alabaster),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

 

2500kg 의 무게에 2m가 넘는 돌 조각은 두 명의 육중한 인물상이 그들의 몸을 기대고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이다. 마치 인물들 간의 힘 대결 때문에 생긴 신체의 흔적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엡스타인은 원석의 자연무늬를 최대한 이용했다. 성경에서 지친 천사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다오”라고 했던 말에 “저에게 축복을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다”라고 응답했던 야곱의 대사는 이 상황에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엡스타인의 조각에서 야곱의 지친 팔은 늘어져 있고 그의 눈은 감겨진 채 하늘을 향해 있다. 게다가 천사는 무릎을 구부려 그의 팔로 야곱을 적극적으로 감싸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이 거대한 인물들은 싸우지 않는다. 성경에서의 야곱이 죽을 만큼 싸워서 축복을 얻어냈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이제 원시적인 에너지로 응축된 육체의 대결은 종료되었고 영적인 고요함이 찾아왔다. 천사에게 전적으로 몸을 맡긴 야곱의 모습은 포기를 모르고 고집스럽게 덤벼들었던 그의 또 다른 면이었을까. 아니면 힘이 완전히 고갈되고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는 또 다른 야곱이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천사를 이긴 야곱을 꿈꾼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토록 이기고 싶었던 상대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은 야곱을 목도한다. 그토록 원하던 하느님의 축복은 나를 버리는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오는 것인가.

 

 

최정선씨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숙명여대에 출강 중이며, 부천 소명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