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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음감을 타고난 신동들

by 파스칼바이런 2016. 1. 8.

절대음감을 타고난 신동들

뇌 2003년 7월호 뇌와교육 | 입력 2010년 12월 22일 (수) 21:48

 

 

클래식 음악계 미완의 대가들

 

나이 어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천재 피아니스트’를 예찬하는 뉴스는 이제는 어쩐지 좀 낯익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어린 나이에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인 신동들에 대한 세간의 호들갑이 지나쳐서인지 체감되는 숫자가 많은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이들의 출현은 드문 일이고, 그 능력 또한 놀라운 것임은 분명하다. 대개 3~4세에 어려운 연주를 탁월하게 해내 주변을 놀라게 하는 음악천재들은 단순히 연주 테크닉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표현하기 어려운 곡들을 깊이 있게 해석해내는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찌감치 천재성의 싹을 보여준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일찍 그 싹을 틔워낼 수 있었을까. 또 앞으로 그들은 어떻게 대가로 성장해갈 것인가.

 

 

절대음감을 타고난 신동들

 

피아니스트 임동혁

지난 6월 내한 공연했던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 클로에 한스립 Chloe Hanslip은 올해 열여섯 살이다. 그녀는 현재 세계 음악계가 주목하고 있는 음악 신동 중 한 명이다. “눈부신 기교와 완벽한 조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각의 곡이 지닌 스타일에 부합하는 표현력과 감수성의 깊이가 일품”(영국 음반비평지 〈그라모폰〉)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이 어린 천재는 이미 다섯 살 때 예후티 메뉴인(그 역시도 5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드러낸 신동이었다)에게 연주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언니가 연주하는 피아노 음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막내딸을 본 클로에의 부모는 그녀에게 미니어처 바이올린을 사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두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다. 다섯 살 때부터 메뉴인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음악 대가들로부터 사사했으며 이미 네 살 때부터 대중들 앞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수상 거부로 작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던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 임동혁도 올해 열여덟 살이다. 현재 신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그는 열 살에 러시아로 건너간 이후 월반에 월반을 거듭해 이미 열다섯에 대학과정인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해 현재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임동혁도 일찍 그 재능을 드러냈는데 그는 음악을 듣고 그대로 피아노로 옮기는 청음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연주를 듣고 악보상에는 샵이 있는데 연주자는 그냥 쳤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지금은 작고한 캐나다의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Glenn Gould도 다섯 살 때 이미 연주와 작곡을 시작했고 열세 살 때 토론토 왕립음악학교에 입학했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첼리스트 장한나나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역시 열 살이 되기 전부터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입상하거나 대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음악을 시작했다.

 

보통 천재들의 뛰어난 음악적 신경계는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할 만큼 섬세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모차르트는 너무 큰 소리의 음들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열 살 때까지도 다른 음악 없이 독주로 연주되는 트럼펫 앞에 순진한 겁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멘델스존은 어렸을 때 음악을 들을 때마다 울곤 했고, 바흐는 틀린 음을 들으면 화가 나서 펄펄 뛰었다고 한다.

 

 

음악 신동들은 음악 밖에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일찍 음악의 길로 접어든 이들이 혹시 음악만 아는 사람들일 거라고 짐작하기 쉽다. 물론 이들이 음악과 함께 하는 시간은 길지만 이들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깊은 이해는 여러 방면에 걸쳐 나타난다.

 

첼리스트 장한나는 지난 2000년 하바드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음악도 따지고 보면 철학하는 것”이라는 그녀는 사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것은 음악 본연의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녀가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책읽기이다. 아무리 바빠도 그녀는 한 달에 2~3권 정도는 읽는다. 스피노자, 톨스토이, 볼테르 등 다양한 방면의 책을 읽는 그녀는 박물관에 가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 어릴 때 최상위 0.001%안에 드는 수재라는 판정을 받고 영재교육을 받기도 했던 피아니스트 임동혁도 생물 같은 과목에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역시 세계 2% 천재들의 모임인 멘사 MENSA 회원인 클로에 한스립도 음악 외에 다방면에 재능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철학이나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이런 이해가 깊이 있는 통찰력과 음악적 감수성을 갖게 하고 그들을 단순히 어린 테크니션이 아닌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는지 모른다.

 

모차르트는 어릴 때 음악 이외에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모차르트에게 배울거리를 주면 그는 완전히 거기에 매달려서 다른 것들, 심지어 음악까지 팽개쳐두곤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그가 계산을 배웠을 때는 책상이건 의자건 벽이건 온통 분필로 쓰인 숫자 천지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언어에도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음악 천재들은 세상과 담을 쌓고 음악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대해 깊고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저 그들이 세상과의 소통에 사용하는 도구가 음악일 뿐이다.

 

 

개혁적 정치성향의 모차르트

 

영화 〈아마데우스〉로 여러 가지 오해를 사고 있는 모차르트도 실제로는 몰정치적이거나 몰사회적이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는 마치 그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천재적 음악성을 쉽게 풀어낸, 세상 물정 모르는 공상가로 그려지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여섯 살 때부터 스물두 살 때까지 삶의 반 이상을 여행 중에 있었다. 연주여행이었는데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풍부한 음악적 경험 외에도 언어와 예절, 지리 등 다양한 것들을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이 기간에 많은 정치가, 예술가들과 교우할 수 있었는데 이런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개혁적 사상을 갖게 되었다.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도 개혁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황제인 요셉 2세는 어린이의 노동, 사형제도, 종교차별, 검열 등을 모두 폐지하면서 강도 높은 개혁을 시도하고 있었다. 모차르트도 개혁파 모임에 참여했고 이때 작곡한 오페라들은 그의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은 이교도 차별 금지 정책을 그대로 반영했고 〈피가로의 결혼〉은 봉건권력에 대한 공격을 담고 있다. 오페라 〈돈 조반니〉는 흔히들 희대의 탕아 카사노바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카사노바는 실제 인물로 베네치아 귀족에게 고용된 밀정이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통해 오로지 폭력만 믿는 잔인한 인간상을 내세워 수세에 몰린 귀족의 가면을 벗겨내기도 했다.

 

 

훌륭한 부모의 사려 깊은 교육

 

음악에도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었던 아인슈타인은 모차르트 음악을 좋아했는데, 그는 모차르트가 마치 우주에 늘 존재하는 것을 집어오듯 공기 속에서 선율을 뽑아온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는 미학적으로 완벽한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찬사인데, 이를 마치 모차르트가 타고난 천재성을 쉽게 드러냈다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물론 모차르트는 절대음감과 같은 청음력과 집중력을 타고난 천재이지만 그것은 아버지에 의해 다듬어졌고, 그 역시 음악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훌륭한 스승이자 아버지인 레오폴드는 작곡뿐 아니라 철학, 문학, 역사 등 다방면에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가 쓴 바이올린 교본은 바흐의 수제자들로 구성된 북부독일학파에서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여기에는 단순한 연주 기법이 아니라 음악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이러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최고의 음악가로 거듭났다. 여기서 체계적인 교육이란 몇 살 때 무엇을 떼고 하는 식의 기계적인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음악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토대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경우 부모의 교육방침은 크게 세 가지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시킨다, 잠을 충분히 재운다, 아이에게 구체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등이 그것이다. 단순한 관심이 아닌 구체적인 관심을 통해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모나 스승의 쥐어짜기식 교육은 곧 한계를 드러낸다. “뛰어난 피아니스트 못지않게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가기를 바랄 뿐”이라는 임동혁 어머니의 말은 천재를 만드는 교육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처럼 아버지가 음대 교수라면 특별히 더 좋은 조건을 갖고 자란 셈이다. 아홉 살 때 주빈 메타의 뉴욕필과 파가니니 협주곡을 협연하면서 세계무대에 데뷔했던 그녀는 그런 집안 환경 덕분에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 수 있었다.

 

 

재능을 펼쳐내는 건 그들과 세상의 몫

 

장영주는 한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무대에 오르면서 배우는 게 많았다. 그러나 누구에게 배웠느냐고 물으면 이 사람에게서 테크닉 배우고 저 사람에게서 앙상블을 배웠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 사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처럼 천재들에게 오는 직관의 폭발은 레디 메이드된 어떤 것이 손에 확 쥐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이전부터 갖고 있었던 것들이 재배열되고 더해지면서 어떤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다.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타고난 재능에 더해 열정과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엄청난 연습벌레다.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루 평균 7시간씩 연습한다. 그래서 그는 미스터치가 없고 무엇보다 “타고난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 됐다. 임동혁, 장영주, 장한나, 클로에 한스립 등 일찌감치 재능을 보인 신동들. 모차르트가 남긴 창조적인 정신세계로 인류가 누렸던 행복감을 떠올려본다면, 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자연스런 토양을 만드는 일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일지 모른다.

 

글│지은주 asaac@powerbr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