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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고 이태석 신부

이태석 신부의 사랑, 남수단 톤즈를 가다 (하)

by 파스칼바이런 2016. 5. 1.

이태석 신부의 사랑, 남수단 톤즈를 가다 (하)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는 사람들

톤즈의 영원한 친구, 그의 정신을 잇는다

발행일 가톨릭신문 2016-04-17 [제2990호, 12면]

 

 

 

 

낡은 옛 진료소 대신 곧 문을 열 새 병원에는 ‘존 리 하스피틀’(John Lee Hospital)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의 ‘슈바이처’가 아니라 톤즈의 ‘돈 보스코’로 불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백광현 신부는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그의 삶과 영성을 돌아보는 한 심포지엄에서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무뚝뚝하고 마치 윗사람처럼 대했지만 이 신부는 사제이자, 의사, 선생님이자 친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톤즈와 한국의 사람들은 이태석 신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오랫동안 그와 함께 일했고, 지금도 톤즈 인근 마을에 머물고 있는 살레시오수녀회 인도관구 미리암 수녀는 무척 길게 이태석 신부를 회고했다.

 

“한센병 환자들을 좋아했죠. 사랑했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농담과 장난을 즐겼어요. 늘 행복하게 일했지요. 물론 힘들어했어요. 뜨거운 정오가 되면 더위에 지쳤고, 받기만 하고 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실망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어요. 아마 기도를 했을 거예요. 그는 정말 돈 보스코 같았어요. 젊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공부시키고 생기 넘치게 했죠. 그는 늘 최선을 다했어요.”

 

- 톤즈의 돈 보스코

누구나 이태석 신부를 일러 돈 보스코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태석 신부의 모습이 돈 보스코와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4살짜리 여자 아이 자클린은 “톤즈에서 우리들은 음악이 뭔지 몰랐는데 신부님이 음악을 선물했다”면서 “음악을 통해서 ‘희망’이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돈 보스코 라디오 방송국장인 레오 아로키아나단(Leo Arokianathan) 신부는 “돈 보스코 성인은 산업사회에서 길거리로 내몰린 불량 청소년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일깨웠다”면서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들에게 똑같은 일을 해주었다”고 말했다.

 

1년 조금 못되게 톤즈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김동길(26·사도요한·인천교구 계산동본당)군은 톤즈의 아이들로부터 “파더 존 리(John Lee, 이태석 신부의 영어식 이름)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일단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태석 신부님에 대해 말할 때면, ‘우리와 함께한 친구’, ‘엄청나게 많은 재능’, ‘함께한 추억들’ 등의 이야기들이 항상 빠지지 않습니다. 신부님은 톤즈의 ‘친구’였습니다.”

 

- 나눔의 기적, 나누는 기쁨

2010년 1월,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헌신적인 삶, 톤즈의 아이들과 함께 엮은 아름다운 사연들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2009년 여름 초판이 발행됐던 유작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생활성서사)는 이 신부 선종 이후 수만 권이 판매됐다. 방송사들은 발 빠르게 추모 특집을 내보냈다.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와 뮤지컬 ‘사랑해 톤즈’도 제작됐다. 그를 기리는 전시회도 열렸고, 그의 정신을 실천하는 이들을 찾아 시상하는 ‘이태석 봉사상’도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아프리카의 한 귀퉁이, 척박한 땅에서 이뤄진 이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에 매료됐다. 이에 따라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실천하려는 단체들이 설립됐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 또는 개인적이거나 상업적인 동기가 끼어들어 이태석 신부의 참된 뜻을 가리는 모습들도 나타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6년, 그의 정신을 따라 나눔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조금 더 꾸준하고 활발했으면 바람도 남는다. 이번 취재 기간 중 확인된 바로는, 현재 톤즈 현지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지속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단체는 ‘수단어린이장학회’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방문 기간 동안 세 차례의 축복식이 있었다. 돈 보스코 여학생 기숙사 부지, 톤즈 다목적 홀, 그리고 돈 보스코 초등학교 등이다. 다목적 홀과 초등학교 건립은 전적으로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원선오 신부와 공민호 수사가 시작한 ‘남수단 마을학교 100개 짓기’로 현재 62개 학교가 세워졌는데, 수단어린이장학회는 그 중 8개 학교 건축비를 지원했다. 학교 하나를 건립하는 데에는 약 7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 톤즈의 가슴 속, 그 깊은 추억

이태석 신부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정작 톤즈에서 그의 흔적은 사실상 진료소 등 몇 군데 붙은 명패 속 ‘존 리’라는 이름뿐이다. 수도회 측에서는 외형적인 기념이나 추모보다는 선교사로서의 그의 신원에 대한 좀 더 본질적인 접근을 원하는 듯했다. 자칫 그를 지나치게 세속적으로 영웅시하는 것은 오히려 그의 참된 뜻을 가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맞는 일이다.

 

그를 진정으로 기리는 일은 그가 품고 있던 정신을 우리도 가슴에 품는 일이다. 톤즈에서 아이들은 이미 ‘존 리’라는 이름을, 그와 함께 나눈 추억들을 가슴 속에 깊이 품고 있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맞아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 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존 리’에 대한 우정 어린 추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추억들은 그들의 미래에 대한, 전에는 간직하지 못했던, ‘희망’을 지탱해주는 발판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랬다. 이태석 신부는 톤즈의 가슴 속에 기억되고 있다. 아주 깊숙이.

이 신부는 생전에 육성으로 당부했다. “예수님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수단은 있는 것이 없는 세상, 한국은 없는 것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 차이 나는 것들을, 우리가 거저 받은 것들을 나눠 줌으로써 메꿔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톤즈 방문을 마친 수단어린이장학회 오이화(실비아) 이사가 주민과 손잡고 인사하고 있다.

 

■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 청소년 의료·교육 지원

 

톤즈의 청소년 의료, 교육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 2010년 이후에는 톤즈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으로 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몽골, 캄보디아, 필리핀, 미얀마 등 아시아 지역 저개발국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이사장은 이태석 신부의 인제대 의대 동기인 안정효(안드레아) 내과 전문의가 맡고 있다.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운영비가 전체 기금 사용액의 10%가 채 안 되는 내실 있는 운영 모습을 보이고 있다. 후원금의 대부분은 실제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나라 청소년들의 교육과 의료 지원 사업에 전적으로 사용한다. 단 2명의 직원이 십 수 억의 예산을 모으고 사업을 진행하는 실무를 담당해 때로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뜻으로 헌신적인 자세를 보인다.

 

안정효 이사장은 장학회의 일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한다. “저희가 하는 일은 우선 가난한 이들의 친구였던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올바르게 알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태석 신부가 했던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기본 취지에 따라, 장학회는 현재 살레시오회 선교국과 MOU(양해각서)를 체결, 실제적으로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선교사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 수천수만의 후원자들이 소박하지만 따뜻하기 그지없는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