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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한상숙 수녀의 중독 치유 일기] (6)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1. 10.

[한상숙 수녀의 중독 치유 일기]

(6)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상처의 보따리를 출생의 선물로 바꿔야

가톨릭평화신문 2019.01.06 발행 [1497호]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2,2)

 

주님 공현 대축일. 주님께서 모든 민족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날이기도 하고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날이기도 하다.

 

나는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겨울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쏟아졌고,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달라붙을 정도로 추웠다. 작은 손으로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면 어머니께서 검정 숯과 솔잎을 주셨다. 숯은 눈사람의 눈과 눈썹으로, 솔잎은 파란 수염으로 만들어 붙였다.

 

그렇게 자란 나에게 성탄절은 늘 추웠다. 옛날 성당 나무 마룻바닥에 앉아서 긴 전례에 참여하면서 어머니 등에 기대어 졸기도 하고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온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제 귀에다 “곧 예수님 오시니깐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속삭이시면서 저의 어깨를 도닥거리곤 하셨다. 곧 오신다는 말에 졸음을 참고 기다리면 놀랍게도 예쁜 구유에 반짝이는 등과 예쁜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셨다. 신자들의 노랫소리가 너무나 흥분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 성당 마당에는 이미 잔치가 벌어진다. 성당 마당에 솥을 걸고 떡국을 끓여 모든 신자가 한 그릇씩 드셨고 눈썹이 짙은 아일랜드 신부님께서는 아이들에게 과자를 한 봉지씩 선물로 나누어주셨다. 성당에서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 때 어머니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성모님이 아기를 낳아서 오늘 예수님이 오시고 멀리서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들고 지금 걸어오고 있다는 이야기 등 어머니는 나에게 훌륭한 교리교사였다.

 

알코올의존치료센터에서 중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만나면서 함께하는  8주간의 중요한 작업 중 하나가 어린 시절의 좋았던 추억을 기억해내는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 어둡고 슬프고 외롭고 힘들었던 과거를 기억해내고 혼란스러워하곤 한다.

 

중독이라는 질병의 원인은 대부분 ‘모성애’의 실종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과거의 어둠을 기억해내고 새롭게 만나는 것을 동방박사들의 발걸음에 비춰 이야기하고 싶다. 알지도 못했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 예수라는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꾸려 짊어지고 먼 길을 떠난 여행자처럼 어렴풋이 알 수 없는 기억 속으로 마음의 상처 보따리를 안고 길을 떠나야 한다.

 

결국,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에서 기적적인 탄생과 마주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친 것처럼 중독자들에게도 슬픔과 어둠이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에서 결정적인 만남, 곧 ‘출생’이라는 빛을 만날 때 회복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슬픔을 기쁨으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상처의 보따리를 출생의 선물로 바꾸어 봉헌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만나게 된다.

 

누구나 과거를 되돌아보면 기쁜 일과 함께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많다. 나 역시 기쁜 일보다 슬픈 일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출생’이라는 빛을 통해 우리를 세상에 나게 하셨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출생의 기쁨’을 영적으로 만나는 작업이다. 이것을 영적 회복이라고 한다. 중독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분에게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이 동방박사의 발걸음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나는 영적 회복의 여행길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 상담전화 :  032-340-7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