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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시사진단] 대화·평화·변화

by 파스칼바이런 2019. 1. 11.

[시사진단] 대화·평화·변화

(성기영, 이냐시오, 통일연구원·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가톨릭평화신문 2019.01.06 발행 [1497호]

 

 

 

 

#1 대화 : 한반도 문제 국제회의에서 만난 싱가포르 학자가 건네준 선물은 6·12 북미 정상회담 기념우표였다.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이 열렸던 센토사(Sentosa)라는 단어가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함을 뜻한다는 문구가 우표첩 첫머리에 씌어 있었다. 평화 중재자의 역할을 해낸 싱가포르인들의 자긍심이 묻어났다. 싱가포르인들에게 대화는 곧 평화였다.

 

#2 평화 : 한반도에서는 대화만으로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2018년 봄부터 가을까지 한반도의 지형을 흔들 만한 7차례의 역사적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모두가 평화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남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평화의 입구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2019년 새해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안정적 평화의 진지가 아니라 불안한 평화의 경계선이다.

 

안정적 평화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사력 사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때만 달성 가능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평화 협정을 통해 군사력 사용의 포기를 정치적으로 약속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평양과 워싱턴에 미국 기업과 북한 기업을 100개쯤 입주시키는 방법이다. ‘군사적 충돌 = 자멸’이라는 공식을 상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안정적 평화로 가는 두 가지 여정 모두 남북미 3국 지도자의 사고와 인식과 행동에 본질적 변화를 요구한다.

 

#3 변화 : 비핵화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김정은이 영도하는 북한이 과연 변화할 것인가이다. 비핵화 회의론자들은 김정은은 변한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인 바 비핵화에 관한 한 진정성은 없다고 단언한다. 반면 협상론자들은 김정일 시대의 북한과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은 다르다고 평가한다. 김정은은 핵을 내려놓더라도 부강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다. 이를 위해서는 김정은에게 변화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기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느 정도 변화의 의지를 가졌는지 아는 사람은 그 자신밖에 없다. 지난 6개월 동안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7차례의 정상회담에 모두 참석했던 유일한 인물이 김정은이다. 그도 이제 생각을 정리했을 것이다. 폼페이오와 약속했던 뉴욕 회동에 김영철을 보내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 재연되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3개월 휴전 합의, 그리고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청문회 드라이브를 걸기 전까지 몇 달 정도 평양과 워싱턴은 비핵화 협상을 위한 기회의 창을 보게 될 것이다. 기해년 일출을 보면서 이 기회의 창이 닫히기 전에 한반도에 안정적 평화가 도래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18년 남북미 3국 지도자가 총력을 다했던 대화(對話) 노력은 이제 겨우 평화(平和)의 물꼬를 텄을 뿐이다. 이제는 지도자들의 사고와 인식, 태도에 변화(變化)를 보여줄 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전했던 메시지는 사실 그리스도께서 대리자를 통해 남북미 3국 지도자 모두에게 던진 준엄한 말씀이 아니던가.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