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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그리스도교 성화에 등장하는 과일들 (1)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 사과, 버찌, 무화과(왼쪽부터).
우리가 흔히 성화(聖畵)라고 말하는 교회 미술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 눈에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열매들이며 꽃들이 소도구로 나와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 열매로는 사과, 버찌, 무화과, 포도, 석류 등이 있다. 화가들은 그림을 통하여 자신이 전하고 싶은 특별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데, 특정한 소도구가 이 목적을 위해 큰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 미술의 전통에서 화폭에 담긴 열매들은 그 나름의 의미 또는 상징성을 가진다.
사과
사과는 여전히 우리에게 친숙한 대표 과일 중 하나다. 뿐만 아니라 사과에 얽힌 동화나 일화 또한 우리와 친밀하다. 가령, 백설 공주 이야기나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 얽힌 일화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사과는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와 아주 밀접한 과일로 자리매김해 왔다.
- 루카스 크라나흐의 사과나무 아래의 성모자.
사과는 많은 종교 전승들에서 신비스런 열매 또는 금단의 열매로 소개된다. 그리고 마법, 젊음, 아름다움, 행복, 불사불멸을 상징한다. 영국의 켈트족은 아서 왕을 비롯한 영웅들이 신비의 섬 아발론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린다고 믿었는데, 아발론이라는 이름은 ‘사과의 땅’ 또는 ‘사과의 섬’을 뜻한다. 북유럽의 신화에 따르면, 신(神)들의 나라 아스가르드에는 봄과 청춘을 관장하는 여신 이두나가 가꾸는 과수원이 있고, 신들은 이 과수원에서 생산되는 사과를 날마다 먹음으로써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신화나 설화들에서 사과를 이야기할 때면 한 가지 조심스러워지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17세기에 들어서 ‘사과’를 뜻하는 영어 단어 애플(apple)이 외지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뭇 열매들을 가리키는 일반 용어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식물의 열매며 줄기에 병으로 생긴 혹을 가리키는 데도 이 단어가 쓰였다. 가령, 토마토가 유럽에서는 ‘사랑스런 사과’라고, 오이가 ‘땅의 사과’라고, 오렌지가 ‘황금 사과’ 또는 ‘중국 사과’라고 불렸다.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우리나라 전역의 들판이나 길가에 자라는 한해살이풀인 독말풀조차도 유럽에서는 ‘가시 사과’라고 불렸다.
그리고 사과는 그리스도교회에서도 일찍부터 널리 사용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라틴어에서 ‘사과’를 뜻하는 단어와 ‘악’을 뜻하는 단어가 똑같이 말룸(malum)이다. 어쩌면 이런 연고가 교회 안에서 널리 쓰여 온 라틴어 성경(불가타)에서 태초의 에덴동산에 있던 금단의 열매 지선악과가 사과로 해석되는 데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또한 영웅 헤라클레스가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 가서 정원 한가운데에 있는 생명나무에 열린 황금 사과를 따오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의 목의 한 부위인 후두(喉頭, 소리를 내고 이물질이 기도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한다)가 ‘아담의 사과’라 불리게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아담이 금단의 과일을 삼키려고 서두르다가 그것이 목에 걸리는 바람에 이 부위가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었다는 속설과 연관된다.
- 후스 반 클레브의 성모자.
어쨌거나 구약성경 창세기에 금단의 열매 이름이 적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교의 전승은 아담과 하와가 먹어서는 안 되는 ‘사과’를 따서 먹었다고 말한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열매는 사과가 되었고, 그 결과로서 사과는 지식, 불멸, 유혹, 인류의 타락과 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과는 어떤 인물과 함께하느냐에 따라 그 상징성이 전혀 달라진다.
화가가 에덴동산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사과가 아담의 손에 들려 있으면, 이 사과는 죄를 나타낸다. 반면에 예수님의 손에 들려 있는 사과는 구원을 상징하고, 그리하여 예수님은 생명을 가져오시는 제2의 아담임을 나타낸다. 이 차이는 그리스도교회 안에서 상징의 의미가 변천되어 왔음을 반영한다. 이를테면 사과가 구약성경에서는 인류의 타락을 의미하고, 신약성경에서는 죄로부터의 구속을 상징한다.
또한 성경의 번역본에 따라 어떤 판본에서는 ‘합환채’를 뜻하는 히브리어 두다임(dudaim, 창세 30,14 참조)이 ‘사랑의 사과’로 번역되기도 했다(이것은 유럽에 ‘사랑스런 사과’로 소개되었다는 토마토와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구약성경 몇몇 곳에서는 사과가 좋은 의미로 사용된 예를 볼 수 있다. 우리말로 ‘당신(그분의) 눈동자’ 또는 ‘네 눈동자’로 번역된 구절이 영어로는 ‘the apple of your eye’로 옮겨지기도 하는데(신명 32,10; 시편 17,8; 잠언 7,2; 즈카 2,12), 이때는 가치 높게 평가되는 대상이나 인물을 가리킨다. 잠언 25장 1절에서는 “알맞게 표현된 말은 은 쟁반에 담긴 황금 사과와 같다.”고 말한다. 요엘서 1장 12절에도 사과나무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사과나무가 시들어 버린 것이 크나큰 손실을 뜻한다. 아가에서는 사과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또는 성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한편, 이스라엘 사람들은 새해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를 맞이하면 ‘새해가 좋고(사과) 달콤한(꿀) 것’임을 상기하기 위해 사과를 꿀에 찍어서 먹는다.
버찌(체리)
요즘에는 우리말 이름인 버찌보다도 체리라는 서양 이름으로 불리는 이 과일은 맛이 감미로운 과일이다. 따라서 버찌는 상냥한 성격, 선행을 한 뒤에 느끼는 흐뭇하고 달콤한 기분, 천국 또는 낙원의 감미로움을 상징한다. 그리고 버찌 나무는 죽음과 소생 또는 새로운 일깨움을 나타낸다. 교회 미술에서는 흔히 아기 예수님이 버찌를 손에 쥐신 모습으로 묘사된다.
- 루카스 크라나흐의 에덴 동산과 인류 타락.
무화과
무화과나무는 신약성경에서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두고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 맺는 일이 없을 것이다.”(마태 21,19)라고 저주하신 데서 연유한다. 그리고 무화과의 잎은 교회 미술에서 흔히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사실을 알아차리고 몸을 가릴 때 사용한 나뭇잎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무화과나무와 열매는 대체로 사악함(죄 많음)을 가리킨다. 또한 더러는 사과나무를 대신해서 지선악과 나무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씨앗이 많다는 점에서 육체적 욕망과 번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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