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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영배 시인 / 끌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4.

신영배 시인 / 끌

 

 

나무 아래에서 마주쳤는데

지저분했고 사나웠고

사랑받지 못한 얼굴

개였고

소녀였고

사람들은 왔던 길로 돌아가며

자기 집 개를 끌었고

자기 집 소녀를 끌었고

나는 두려워하는 나의 개를 끌었고

두 짝의 그림자를 끌었고

집 없는 소녀가 개를

집 없는 개가 소녀를

가까이 가까이

한 송이

물송이가 벌어지다

끌어안으며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아닌

벌어지며

한 송이

물송이가 벌어지다

사랑은

문자의 얼굴이 흔들렸다

나는 나의 개를 들여다보았다

말과 세상이 다른

어둠 속에서

한 송이

벌어진 방향으로

나는 나의 사나운 발을 끌다

상한 두 짝의 날개를 끌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7월호 발표

 

 


 

신영배 시인

2001년 계간 《포에지》에 〈마른 피〉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기억이동장치』,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물속의 피아노』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