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백규 시인 / 입하
목련 그늘 옆에서 네가 허묘를 파고 있다. 착한 아이야 여기 몸을 가지런하게 벗어두고 떠났구나.
어린 가지에 걸린 낮달이 해지듯 나는 시름없이 누워 피가 도는 입술을 문 채 앞으로 식어갈 바람 따위를 헤아려 본다.
슬하의 산등성이가 뼈와 살을 털고 흰 영혼을 몰아쉴 때까지 백지를 넘기며 싯푸른 목탄 냄새나 맡고 싶다.
좋은 날마저 하품하듯 마르고 툭 하니 돌을 골라내는 손을 보면 헛웃음이 샌다. 잔풀 아래서 함부로 헤집어지는 일을 열사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새끼를 치는 고라니가 처서 즈음을 건너다 보고 그 깊은 눈동자 뒤에서 무언가.
무너지고 있다.
돌아가자 목이 잠기고 안색이 흐릿하니까 정말로 목련나무가 마냥 져버렸으니까 우리 인제 그만 모두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자.
이곳은 내륙인데 여러 물새가 새의 모양을 하고 해안선 너머로 터뜨려진다.
숨이 따뜻한 너와 지상에서 만나 아름다웠다.
계간 『발견』 2018년 여름호 발표
최백규 시인 / 너의 18번째 여름을 축하해
키스를 하면 멀리서 누군가 죽어간다는 말이 좋았다.
멸종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공원 구석에서 인간을 경계하는 짐승들의 밤 목과 귀를 핥으면 모든 하루가 무사해지는 나는 신이 만든 세상에 있다.
너의 우주와 밤의 빛이 공전으로 맞물려 회전하고 있다면 자전은 입술의 방향계일까.
숨을 참아도 돌아오지 않는 과거가 있고 현재의 미래와 미래의 현재가 같은 몽타주 위에 멈추는 것처럼, 흰 꽃과 검은 옷으로 붉어지는 혀는 없다.
문득, 지구가 몸속에서 또 심장을 밀어내었다.
지평시차로 멀어질 때마다 전 세계 성당은 천국으로 부서진 구조 신호를 보내고 신은 인간을 듣지 못한 척한다.
우리는 옥상에서 젖은 몸속으로 무덤 냄새가 추락할 때까지 서로의 빛을 마시며 십자가를 태워 올렸다.
너무 아름다워서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믿었다.
웹진 『문장』 2016년 1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난희 시인 / 얘얘라는 인형 (0) | 2019.09.25 |
|---|---|
| 강순 시인 / 밤새 켜 둔 슬픔 (0) | 2019.09.25 |
| 이선영 시인 / 조로(早老)의 화몽(花夢) 외 1편 (0) | 2019.09.24 |
| 유안진 시인 / 다보탑을 줍다 외 1편 (0) | 2019.09.24 |
| 방수진 시인 / 낙엽을 버티는 힘 외 1편 (0) | 2019.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