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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순 시인 / 밤새 켜 둔 슬픔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5.

강순 시인 / 밤새 켜 둔 슬픔

 

 

어둠의 얼굴은 사각형.

어둠이 어둠의 얼굴을 보여줄 때

태양은 영원히 사라진 옛 문명처럼

창문턱을 넘지 못한다.

어둠의 얼굴이 당신을 응시한다

해골 같은 빈약한 문장들조차

본능적으로 허공에서 낚아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치는 붉은 조난신호

배고픈 어둠의 얼굴은

당신을 허공에 못 박고 나서

기억을 분해하기 위해

고단한 사각턱을 슬픈 도구로 이용한다

 

이제 당신은 부서지고 부서져

당신이란 원래 없는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주에서 떨어진 유성 같이 당신 눈동자가

노트북 모니터를 번쩍, 침투하기 전까지는

 

계간 『문학과 사람』 2018년 여름호 발표

 

 


 

강순 시인

제주에서 출생. 1998년 《현대문학》에 〈사춘기〉 외 4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이십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