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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희 시인 / 얘얘라는 인형
흑점을 지닌 물방울이 산도 밖으로 미끄러진다.
어제는 나의 궁전 바깥으로부터 보내오는 어떤 신호를 들었다. 새로운 암호를 떠올리며 죽은 척을 했지.
소용돌이치는 고요가 서슴없이 쏟아지는 시간.
붉은 핏덩이가 슬픔을 신고 암문을 걸어 나온다.
악몽처럼, 비린내가 부푸는 검은 봉지 속에서 아주 자고 갈 요량으로 누워 생각한다.
나는 동물세포였을까, 식물세포였을까.
자라다 만 손가락 사이로 차갑게 굳어가는 새로운 우주가 윤곽을 드러낸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 심심했던 세포덩어리.
심심한 건 딱 질색이어서 망가진 심장을 움켜쥐고 아득히 날아간다.
곁에서 나란히 날고 있는 길거리 어디서나 스쳐가는 아무나가 아닌 얘얘들아.
다시는, 우리도 모르게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지 말자.
웹진 『시인광장』 2016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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