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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시인 / 의자 이야기
의자가 어느 것을 뱉어낸다.
꾸벅꾸벅 졸던 중년 남자를 분홍색 여자의 분홍색 엉덩이를 모르는 할머니를 도둑놈을 불편한 가방을 뱉어낸다.
새가 날아가고 분홍색이 날아간다. 파인애플과 도둑놈의 코가 날아간다. 별이 지고 천 년 동안 강물이 지나간 흔적들이
의자가 없다면 분홍이 없겠지 도둑이 없겠지 모든 이야기가 없겠지 우리는 이야기가 없어서 웃을 수가 없다.
의자가 날아온다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월간 『현대시학』 2013년 6월호 발표
최호일 시인 / 컵
바닥에 쏟아진 물같이 죽은 사람에게 봉투를 주고 돌아설 때 컵은 실패하고
누가 이십 층에서 뛰어내려 구 층을 지나간다.
그는 조금 전의 이십 층을 기억하고 있다. 구름을 불러 잊고 있다 층과 층 사이에는 많은 계절이 있다.
지금 이곳은 안전해 아직 컵은 시원하고 견고하다.
안녕, 하고 웃었으면 좋겠는데 바닥이 나를 배신하고 애인으로 안는다면
비싼 컵이었다면 아까워라 파편은 어떻게 치우지 컵의 세계에서 손이 없다면 어떡하지
구름을 지나 컵이 잠시 후 팔 층으로 떨어질 때 너무 잡기 어려워
아래의 컵을 놓치고 컵의 아래를 잡고 있을 때
월간 『현대시학』 2013년 6월호 발표
최호일 시인 / 열한 시 반
열한 시 반에 누가 보내준 것 같은 봄이다 누가 버린 것 같은 열한 시 반이다
잠깐이면 돼
빵을 먹고 손을 뒤에 감추고 시간이 다가와 검은 비닐봉지 같은 것을 놓고 갔다 그것을 주웠고 손에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시간은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시간 물이 되는 시간 나이를 알 수 없는 염소가 이쪽을 보는 시간
바다 깊은 곳에서 비가 내리고 멸치가 시간을 발명하고 담겨있던 접시를 버린다 멸치가 멸치의 머리를 버린다
백 년 후의 기차를 예약하고 껌을 씹으며 그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갈 때 열한 시 반이 완성된다
봄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아니고 그때 맡았던 기다랗고 둥근 빵 냄새거나 빵이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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