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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길수 시인 / 그림자의 생존 방식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8.

한길수 시인 / 그림자의 생존 방식

 

 

바람이 골짜기로 들어가 소멸하면 그리움으로 서성이다가 별빛을 따라 밤새 흐르는 안개의 뒷모습으로 환생하는 것인지도 몰라

 

선잠에서 깨어나면

꾸다 만 꿈이 어지러이 뒹굴고 있어

또렷한 어느 부분이 있고

기억해야 할 것만 같은 희미한

흑백의 어느 한 부분도 있어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나는 거기 없었어 모르지, 거울 뒤에서 흐르고 있었는지 꿈과 의식의 중간쯤에 팔을 넣으면 말랑하게 만져지는 내 기억의 이면, 그러니까

 

죽음을 하나로 이으면 잃어버린 내 전생을 만나고 환생을 만질 수 있을까. 후회의 생으로 돌아가 예고된 삶을 되짚어 나를 앞서 펼쳐보는 예지몽을 해독할 수 있을까.

 

꿈은 땅속이든 물결이든 허공이든 넘나드는 의식의 부스러기 같은 것

실안개가 산 그림자를 따라 흐르듯, 나는

거울 밖으로 서럽게 흘러서 무엇으로 반짝이려 했을까.

 

선잠에서 깨어난 아침

남아있는 내 미래의 분량을 매끈하게 편집하는 행간

여전히 앞날은 눈부신 흑백.

 

웹진 『시인광장』 2018년 4월호 발표

 

 


 

한길수 시인

1963년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 가천대학교 경영학부 졸업. 2015년 《시사사》 하반기 신인추천작품상으로 등단. 현재 (주)루카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