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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 시인 / 黑板
내가 걸어가고 있을 때, 비에 젖은 가로수가 발바닥을 말리며 햇빛 속으로 따라오고 있었어, 나는 갇혀 있는 5月의 우체국길을, 주머니에 가득한 햇살을 만지면서 걸었어, 그전에 내가 머문 時節에 못을 박았어. 햇살은 식어 있었어, 안소니 파킨스 얼굴이 지워져 있는 이 黑板, 그 벽까지 내가 먼지를 흘리고 돌아왔을 때, 내가 흘린 먼지들이 내 길을 따라 기어나오고, 누나 누나, 어디에서나 햇살은 식어 있었어, 이놈의 黑板, 젊음이 깨어진 얼굴을 그리면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방에 들어가 울었어. 울면서 나는 들었어. 가로수의 소리침, 소리의 門 뒤에서 하얗게 지워지는 햇살들, 지워지면서 다시 흘러내리는 내 얼굴의 面角을 건져내면서, 나는 하얗게 비어가고 있었어.
월간 『현대시학』 1969년 창간호(3월호)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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