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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산 시인 / 종이컵에 대한 종이컵을 위한
종이컵이 좋다 환경을 사랑하는 그대들이 싫어할 이야기지만 오늘도 종이컵을 집어든다 이름이 없어 좋다 고뿌도 그라스도 아니고 잔이라 부를 수도 없는 그래서 뭐든 담을 수 있어 좋다 그대들은 혹여 담배꽁초나 타액이 들어 있는 와인잔을 맨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그런 것들마저 허락하는 모습을 떠 올릴 수 있는 것은 단지 종이컵뿐이다 때로 버리는 사람들에게 0.001ppm의 독성으로 저항하는 자존심을 잃지 않기도 하지만 아무렇게나 물 위에 떠 흘러가고 불속에 던져져 오직 한 순간 환하게 타오르는 종이컵이 나는 아니 나라면 아니 내가 좋다
반년간 『두레문학』 2010년 하반기호 발표
황정산 시인 / 사라진다
없어진 한 짝 양말에 관한 말은 아닌 꿈속에서도 마주칠 수 없는 모래 냄새가 나는 말이긴 하나
제 꼬리를 삼키며 숨는 뱀의 이름 같기도 한 그러나 모든 구멍들을 채울 수 없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한
연을 날리다 하늘을 본 사람들은 아는 말이지만 알을 낳는 새에 대한 말은 아닌
둔중한 것들이 용적을 비우고 차지하는 것들이 바람에 실리고 불리웠던 것들이 이름을 감추고
사라진다 그렇게 살아진다
격월간 『유심』 2011년 3~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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