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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방수진 시인 / 낙엽을 버티는 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4.

방수진 시인 / 낙엽을 버티는 힘

 

 

가랑비 몇 방울에도 못 이기는 척

떨어지는 낙엽이 있다

잎맥 끝자락부터 제 몸을 뉘여놓는, 허나

누군가의 어깨 위로 제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낙엽과 낙엽 사이 그 허공의 힘으로 눕는다

 

평생, 서로의 등짝만 보고 살아간다는 일

 

밤이 되면 우리는 누군가를 견뎌야 한다 아래층 여자는 나의 등을 나는 윗집 남자의 등을, 밀어야 한다 그 등짝에서 박차고 나왔던 식탁이 보이고 뺨 위로 스친 손바닥이 보이고 내지 못한 이력서들이 가득 찬 책상이 보이지 누군가 이 천장을 밀고 우리의 등짝을 받치고 있다는 것, 한 평 남짓한 방이 밀어주는 힘으로 쌓여가는 우리들, 허공들,

 

몇 가지 음식 나누어 주러 들른 옆집 벽 뒤로

낙엽들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다

어떤 사내가 밟아 깨우기 전까지 그들은

제 뒤를 못 본 채 꿈을 꿀 것이다

 

매일 누군가의 등짝을 밀면서도

우리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를 몰랐던 것처럼

 

2008  신춘문예 당선시집(문학세계사, 2008) 발표

 

 


 

 

방수진 시인 / 내몽고, 기록수첩

 

 

  바람이 긁고 간 무늬를 쫓아 이곳까지 왔다

  멀리서 유목민의 밥 짓는 연기, 말들의 몰아세우는 입김들이

  층층이 겹을 쌓아 그대들 집 만드는 곳

  집시의 눈 깜박임에 날은 저물고

  횃불의 행로를 따라 풀이 드러눕는다

 

  내일은 돌아올까요

 

  튀밥 튀어 오르듯 자주 별똥별이 떨어져 내려

  그대들 눈 속에 박혔을까

  모닥불 사이로 던져주는 한 주먹의 잿밥도 서러운지

  종종 눈물이 맺혔다 쿵

  떨어졌다

 

  짙은 구름이 줄지어 길을 떠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열병에 시달렸다

  떼 지어 몰려오는 양처럼 무섭게 반점이 돋아나고

  100년간의 가뭄같이 온몸이 쩍쩍 벌어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꿈속에서, 간혹

  집시 여인의 곡소리가 귀에 들렸지

 

  이곳은 건너오는 노을마저 땅 밑으로 가라앉힌다

  모래 짙은 바람이 닿았던 곳마다

  수십 개의 멍구빠오 1) 가 세워지고 또 허물어질 것이다

  집시 여인의 검은 눈동자에서 밤은 왔다가 가고

  이따금, 돌아오지 않는 그대들을 향해서 피우는 향들이

  고개를 넘어 곳곳으로 신열처럼 흩어진다

 

1) 내몽고인들의 전통적 주거형태. 텐트식이라 손쉽게 짓고 허물 수 있어 이동하기 편리하다

 

계간 『시인시각』 2009년 봄호 발표

 

 


 

방수진 시인

1984년 부산에서 출생. 경희대 국문과 4년 휴학중. 2007년 제8회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