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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호 시인 / 나무의 정신
죽은 나무일지라도 천년을 사는 고사목처럼 나무는 눕지 않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내 서재의 책들은 나무였을 적의 기억으로 제각기 이름 하나씩 갖고 책꽂이에 서 있다.
누렇게 변한 책 속에 압축된 누군가의 일생을 나는 좀처럼 갉아 먹는다. 나무는 죽어서도 이처럼 사색을 한다.
숲이 무성한 내 서재에서는 오래 전의 바람소리, 새소리 들린다.
시집 『함부로 성호를 긋다』(천년의시작, 2004) 중에서
강경호 시인 / 비둘기
사무실 입구에 가끔 취객이 오물을 게워내면 늘 그 자리에 내려와 주워먹고 햇빛 속으로 날아가버리는 새가 있다
지하 단란주점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사연이었을지 가슴 찢는 실연의 상처였을지는 모르지만 눈물 찔끔거리며 게워냈을 슬픔을 먹어치운 새를 생각하며 아직 물기젖은 빈 자리를 바라본다
지금껏 병문안을 가고 망자의 영정앞에 국화꽃을 바치면서도 참을 수 없어 왈칵, 토해냈을 밥알모양의 슬픔을 비켜가고 싶은 내 앞에,
어둠 속으로 날아와 낯선 누군가의 슬픔을 먹어치운 한 떼의 은빛 하느님이 실루엣 눈부신 아침 하늘로 사라지는 것이다.
계간 『서정시학』 2010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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