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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선 시인 / 오후를 견디는 법
몇 겹으로 접혀 낡은 소파에 누웠다
며칠 현관문이 '외출 중'을 붙잡고 서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방전되었다
익숙한 풍경이 커튼처럼 걸리고 빛이 차단된 몸에서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화창한 오후는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는다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 나는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 나를 필사하는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흐린 지문으로 나를 한 술 떠먹는다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 본다
계간 『詩로 여는 세상』 2011년 여름호 발표
오명선 시인 / 얼음의 시간
과녁을 그리던 수심이 묶여있다
수면을 꽉 깨문 구름의 어금니들 밑줄 그어놓은 물의 잔뼈들이 이렇게 견고하다니,
지금은 얼음의 시간 잔물결이 맨발로 견뎌야 할 저 강은 등돌린 밤이다
톱날로 베어지는 물도 있어 계절은 제 그림자 속에 가둬둔 울음을 관통해야 한다는 것
저것은 침묵의 두께 내 무릎관절이 수천 번을 더 오르내려야 할 미완의 경전이다
앙다문 물의 입술 굳어버린 물의 표정은 싸늘하다
월간 『현대시학』 2012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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