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이엽 시인 / 삐뚤어질 테다
나는 늘 한쪽으로 기울여져 있었다.
한 때는 오줌싸개여서 한 때는 아버지가 목수여서 한 때는 키가 작아서 자만할 수 없었다. 한 때는 초라한 내 행색에 주눅이 들고 한 때는 마른 얼굴의 광대뼈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돌리기도 했었다. 좋은 것 아홉 가지를 합해도 모자라는 하나를 당할 재간이 없었던 그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기 시작한 그때부터 나는 기울어졌을 것이다.
기울어진 내가 비탈에 선 나무가 되려 한다.
비대칭의 균형을 선택하기로 한 나무. 삐뚤어지게 앉아 바람 길을 열어주고 삐뚤어지게 엎드려 진달래뿌리와 손가락 걸고 삐뚤어지게 누워 잎사귀를 흔들어주면 구석구석 골고루 햇빛 비쳐들 터이다. 잔가지 사이사이로 주먹별이 내려올 터이다. 모난 돌이 돌탑을 받쳐주듯 나를 고여 주는 삐뚤어진 생각의 작대기 두드리며 삐뚤어지게 뛰어가 시를 부르고 삐뚤어지게 서서 밀어줄 테다.
계간 『애지』 2012년 봄호 발표
장이엽 시인 / 등(等)
비주류에 대한 가장 함축적인 이름이다.
열거된 각각의 명사 뒤에서 때로는 '들'로 때로는 '따위'로 바뀌어 불리기도 하는 확인할 필요가 없는 초대손님
솜털로 채워진 낙타의 귓속에 관심이 있는 당신이라면 '등'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다. 바위 그늘에 주저앉아 종일토록 바람을 기다리는 노루귀가 되어본 당신이라면 '등'의 구별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여! 행여나 부피를 재려고 실린더 눈금을 읽게 될 때는 위에서 내려다보지도 말고 밑에서 올려다보지도 말고 눈높이를 액체 표면과 수평이 되도록 맞추어야 한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당신 옆에서 간간이 물잔 비우는 나 등을 만나거든 혼자서 술을 따라 마시는 나 등을 만나거든
당신의 이름을 받쳐주는 기타 등등을 만났다고 기뻐해 주시라. 당신의 얼굴을 밝혀주는 기타 등등을 만났다고 반가워해 주시라.
격월간 『유심』 2010년 7~8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충규 시인 / 물의 寺院 외 1편 (0) | 2019.09.29 |
|---|---|
| 이화영 시인 / 강을 건너간다 외 1편 (0) | 2019.09.29 |
| 오명선 시인 / 오후를 견디는 법 외 1편 (0) | 2019.09.29 |
| 이정민 시인 / 만병통치 (0) | 2019.09.29 |
| 정기복 시인 / 늦가을 행주강에서 (0) | 2019.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