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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영 시인 / 강을 건너간다
두 나비가 강 이쪽에서 노닐다가 한 마리가 강을 건너간다
江은 이별의 긴 틈이다 이별은 아주 멀어져야 아름다운 법 등을 돌려 강을 건너는 나비의 눈이 젖어 있다면 강은 더 격렬하게 안개를 피워 이별을 감춰 주리라 그리하여 오늘밤 강에 내려와 더 젖어드는 물별은 이별의 사생아 기억을 모르는 나비가 별이 된다 했다 넘치는 기억을 털어내려고 그의 날갯짓은 숨이 가쁠 터 내가 꽃일 때 소리 없이 날아와 여린 입술을 묻고 고충을 털어놓던, 이별을 예감하며 격렬했던, 그 나비가 흘리고 간 노래 한 소절 차갑게 굳어버린 심장을 깨뜨리며 흘러간다 팔랑,
계간 『미네르바』 2012년 봄호 발표
이화영 시인 / 몸이 바뀌는 시간
골목길에 들어서는 순간, 향기가 먼저 보슬보슬 내려앉고 있었다 비 맞는 라일락의 잎잎이 가느다랗게 앓는 소리를 냈다 라일락과 허공 사이로 기타소리가 빠져나와 내 어두운 빗장뼈를 열고 스며들었다 속에서 울리는 음률에 살결이 촘촘하게 떨렸다 걸음을 멈추고 나는 비의 악보를 품에 품었다 공유하는 음악이 있는 사이여야 연인이라지 그 음악의 초원에서 사랑을 한다지 풀잎같이 흔들리며 자맥질하는 숨이 이슬같이 맺히며 서로의 호흡으로 悲歌를 부른다지 위험한 소원을 구름으로 풀어 허공에 놓으며 서로를 씻어줄 빗방울을 기다린다지 마침내 비가 如一하게 쏟아지면 서로의 몸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간다지 몸이 바뀌어야 비로소 사랑이 완성되는 둥근 음악처럼!
계간 『시와 소금』 2012년 봄호(창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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