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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라라 시인 / 이것은 어느 날의 코미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30.

최라라 시인 / 이것은 어느 날의 코미디

 

 

  이것은 나는 왜 수영을 못하는 걸까 고민하다 발견한 사실이다

  이것은 내가 원피스를 좀처럼 입지 않는다는 사실과는 무관하다

 

  수영을 못한다는 건 몸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

  물오리에게 물어본 적 있지

  갈퀴는 일 분에 몇 번이나 움직이니?

 

  나는 왼발 오른발 구령을 맞추고

  끊임없이 수를 세지

 

  그러니까 수영은 몸이 아니라 수 세기의 문제

  오리와 나의 차이는

  59에서 60 사이의 문제

  밥 먹는 손이 오른손이라는 기억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는 일이 중요해

 

  나는 자주 헷갈리고 오리는 한 번도 거침없지

  이것은 나는 왜 숫자를 못 셀까 생각하다 발견한 사실

  오리는 한 번도 수를 세지 않고

  나는 날마다 숫자만 세지

 

계간 『시작』  2011년 겨울호 발표

 

 


 

 

최라라 시인 / 바퀴의 회전론

 

 

  어제 저녁 고속도로에서 20중 추돌이 일어났다

  한 운전수의 졸음이 원인이라 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바퀴만 아는 사실

 

  제 관성을 어쩌지 못하고 공회전 하는 바퀴

  그 공허한 회전의 순간,

  허공이 바닥이 되는 순간,

  바퀴는 회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바퀴에게 금기는 단 하나

  회전하는 순간엔 회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

  가을이 굴러가면 겨울이 오는 것이나

  한 사랑이 돌아가면 다음 사랑이 오는 것도

  회전의 규칙 속에서 자연스러울 뿐

 

  도로를 이탈한 바퀴의 대부분은

  그 금기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회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바퀴들이 굴러가고 있다

  아무 생각 없는 바퀴들은 잘도 굴러가고 있다

 

계간 『시와 미학』 2012년 가을호 발표

 

 


 

최라라 시인

1969년 경주에서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1년 《시인세계》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