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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람 시인 / 밴드 만들기
재미가 없어 밴드나 만들어 볼까 인터넷 카페에 구인 광고를 냈습니다. 2009년 1월 1일
아직 밴드명이 없습니다. 모집 분야는 보컬, 드럼, 베이스, 신디사이저, 리드 기타입니다. 참고로, 보컬은 얼굴이 관념적이어야 합니다. 특정한 장르를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되 대중이 좋아할 만한 꺼리들은 제공하고자 합니다. 연습은 일주일에 한 번 평일 저녁에 합니다. 음악에 올인 할 생각은 아닌데 그렇다고 단순 취미로 할 생각도 아닙니다. 자작곡 위주로 하면서 간간이 멤버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카피할 예정입니다. 공연은 하고 싶을 때만 합니다. 밴드가 잘 나간다고 하더라도 서울로 올라갈 생각은 없습니다. 나이는 스무 살에서 서른다섯 살까지입니다. 딥 퍼플, 메탈리카, 건즈 앤 로지즈, 너바나와 같은 음악에 관한 작은 사연과 인간에 대한 쥐꼬리만큼의 연민을 갖춘 분을 환영합니다. 멤버 모두가 모일 때 밴드 이름을 정하겠습니다. 연락 기다립니다. 아참, 저는 세컨 기타 왕초보입니다. 전화: 010-2807-0423 2010년 1월 1일
1년째 구인 중입니다. 한꺼번에 연락 오는 것이 아니라 난감합니다. 멤버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다 다른 밴드를 구했거나, 다른 것들로 관심을 바꿨을 수도 있겠죠. 언제쯤 밴드를 만들어 합주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기억에 남는 오디션 얘기나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오디션 1 - 보컬
좋아하는 성향은? - 일반이 아닌 이반이에요. 언젠간,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공연할 거에요. 사람들은 쉽게 동성애자라고 불러요.
음악적 성향도 이단인가요? - 아니요, 평범한 게 좋아요. 스크리밍이나 그로울링 창법은 질색이에요. 엄마 아빠 부부싸움 소리 같거든요. 내 젖가슴처럼 모던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모던한 가슴이란 어떤 건지 감이 잘 안 오는데요? - 만져봐야 알 거에요. 손 좀 이리…
죄송해요. 전 고전적인 일반인이라, 그저 음색을 듣고 싶을 뿐이에요. - 단둘이 포개져 노래하기엔 노래방이 최고에요. 돈은 준비됐겠죠?
오디션 2 - 드럼
직업이 뭐에요? - 비정규직인데, 그건 왜요?
아뇨, 그냥 한 번 물어봤어요. 연습할 시간은 괜찮으세요? - 주간 심야 근무가 뒤죽박죽이라, 둘째 넷째 일요일 밖에 안돼요.
드럼을 꽤 잘 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 뭘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대학 주변에서 타이어만 4년 정도 쳤을 뿐이에요. 밴드 경험은 없어요.
그런 건 중요치 않아요. 드럼을 치려는 이유는 뭐에요? - 발 베이스 밟는 소리가 그곳을 압박해줘요. 커트 코베인의 유서를 처음 읽었을 때처럼, 은은하게
오디션 3 - 베이스
혈액형이 뭐에요? - 전 X형이에요. 지독하게 질긴 피죠. 애인에게 차인 후 자살 시도를 세 번 했어요. 모든 꿈이 산산 조각났는데 손목의 이 동맥은 끊어지질 않더라고요. 베이스 줄처럼 남아 있는 이 흉터 좀 보세요. 하루는 병원에 누워 멍하니 있는데 어디선가 둥― 소리가 들렸어요. 가만히 보니 제 손목이 심하게 떨리고 있더라고요. 한번 튕겨 보실래요?
오디션 4 - 신디사이저
-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즉흥 연주를 좋아하고요. 악보대로 치는 걸 싫어해요. 교과서니 정석이니 바이블이니 말하는 사람들을 경멸해요. 인생은 불확실한 느낌이에요. 그걸 잡으려다 늙어 죽고 싶지 않아요. 편하게, 나만의 음악을 하고 싶어 중퇴를 하고 밴드를 찾고 있어요.조건은, 다른 밴드 세션도 하려고 해요. 얽매이는 자체를 견딜 수 없거든요.
그렇다면, 사랑은 못하시겠네요? - 16비트 리드미컬한 만남이 좋아요. 양다리는 기본, 다양함이 얽히고설켜야 낯선 코드가 만들어지는 거 아니겠어요?
결혼은 하실 거에요? - 폴리아모리라면… 신선한 아이들을 낳아야 가정과 국가와 세계가 조화를 이루죠.
오디션 5 - 리드 기타
- 열 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해요. 제 손가락을 보세요. 너무 빨라 보이지 않지요? 당신도 장님이에요. 하지만 걱정 말아요.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니. 모양이 없는 것은 소리로 존재해요. 이 손가락 끝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와서, 내게 안마를 받는 손님들은 모두 간절히 바라던 꿈을 꾼대요. 불면증이나 이룰 수 없었던 아픔이 있다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왜 하필이면 속주 기타를 추구하나요? - 랜디 로즈의 마지막 비행처럼 리듬을 쪼개고 쪼개고 광속의 멜로디에 이를 때쯤, 나 자신이 보일 것만 같더라고요.
그렇게 잘난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굳이 봐서 뭐하시려고요? - 그건 그렇지만 사실 전, 고아거든요.
보신 바와 같이, 밴드 만들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악기처럼 자폐적인 사람들이 제 몸을 때리고 찢어 신음을 조율하고, 가식적인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저들은 현재 연락 두절 상태입니다. 게으르고 할 일 없는 사람, 심심해서 미치기 일보 직전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잘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노력하겠습니다"와 같은 상투적인 말이 미덕인 양 내뱉는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차라리, 최선을 다해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낫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생뚱맞을지 모르지만, ( ) 만들기로 바꿔보기로 합니다.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연락 오는 사람과 간단한 통화 후에 공통된 ( )이/가 나오는 분들과 ( )을/를 만들겠습니다. 너무 즉흥적이지 않냐고요? 아무튼, 우리 함께 재밌는 세상을 살아보지 않겠습니까? 전화: 010-2807-0423 이메일: suaefuck@hanmail.net
추신} 오늘은 2011년 1월 1일. 이 글을 작성한 뒤 아직도 인터넷에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간 『시작』 2011년 여름호 발표
김사람 시인 / 영원을 부르는 벨칸토 창법
하드커버가 들썩거려요 마스께라! 무거운 뜻을 가진 가지가 우거지고 하늘보다 커다란 잎이 자라 활보하는 새들과 구름의 길을 모두 가려버리고 있어요 잎이 울음의 고체형이란 걸 안다면 마스께라! 나무에 기대어 울 자격이 있어요 울음에도 기교가 필요하단 걸 아나요 꽃이 죽고 새가 죽고 바람이 죽고 소리만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내 귀는 늘 젖어 있지만 아무도 몰라요 뼈가 흔들려요 폐가처럼 텅 빈 생각에도 흔들려요 나는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해 노래한 적이 있어요 미래는 딱딱하지 않았으므로 마스께라! 현재로 공명되지 않아요 내 마른 몸은 그림자로 채워져 있어요 호흡을 할 때마다 들락날락 나를 찌르는 딱딱한 그림자가 무서워요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날 이용하죠 나는 곧 버림받을 것을 예감해요 몸을 부비는 소리로 유혹하면 마스께라! 촛대에 검은 불이 붙어요 긴 시간을 흐르는 미성으로 당신이 오고, 떠나는 방식대로 내가 미쳐가고 있어요 마스께라!
월간 『현대시학』 2011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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