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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시인 / 모순의 흙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 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하나의 접시가 되리라.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흙, 그릇.
시집 『 모순의 흙 』(고려원, 1987) 중에서
오세영 시인 / 열매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입에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시집 『어리석은 헤겔』(고려원, 199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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