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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규 시인 / 가시연꽃
호수가 거의 말랐다는 당신이 보낸 엽서 받았습니다 호수 위에 띄우려 했던 가시연꽃은 당분간 우편함 속에 꽂아놓겠습니다 붉은 뻘 흙 꺼칠한 무늬를 내 집 거실 바닥에 그려놓은 걸 보니 지난밤 악어가 다녀간 듯합니다 반짝 닦인 추억 너머 호수는 지금 얼마나 수런거릴까요 아침에 일어나니 베개가 흠뻑 젖어 있네요 가시연꽃은 조심스레 뿌리 그쪽으로 내리겠죠 이제 그만 오세요 당신 분홍색 꽃잎 등으로 떠받치고
시집 『녹슨 방』(민음사, 2006) 중에서
송종규 시인 / 공중을 일으켜 세우는 하나의 방식
기억의 반을 세월에게 떼 준 엄마가 하루 종일 공중에게, 공중으로, 전화벨을 쏴 댔다 소방호수처럼 폭포를 이룬 소리들이 공중으로 가서 부서졌다
휘몰아치는 새떼들
머리 위에 우두커니 떠 있는 공중, 나는 공중에 머리를 박고 공중에 대해 상상하다가 공중을 증오하다가 털신처럼 깊숙이 발 밀어 넣고 공중에서 공중을, 그리워 하다가 들이 마시다가
깊은 밤 불 밝힌 네 창으로 가기 위해 내 방의 불을 켠다 네 불빛과 내 불빛이 만나 공중 어디로 가서 조개처럼 작은 집이라도 짓기나 한다면
이것은 연애가 아니라 공중을 일으켜 세우는 하나의 방식
모든 공중에, 모든 공중을, 의심하거나 편애하거나 생략하기도 하면서
휘몰아치는 저, 새떼들
계간 『애지』 2009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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