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서영 시인 / 카프카의 잠
비둘기는 환풍구 배관에서 겨울을 나고 날아가 버렸다 이젠 덕지덕지 똥만 가득 쌓여있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잠의 배설물들
서울 가서 본 적 있다 점심시간 손님들이 북적대는 칼국수집 출입문 앞에 환기구 하나조차 얻지 못한 사내가 잠들어있었다 손님 중에는 잠든 사내의 늘어진 다리를 슬쩍 뛰어넘어 식당으로 들어간 이도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어서인지 손님들도 식당주인도 사내를 잠의 배설물쯤으로 여기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낯설고 기이한 몇 가지 풍경을 기억해냈는데 그 칼국수집 앞에서 만난 카프카와 서울역 광장 노숙자들이 하루 종일 만나는 예수와 애 밴 여자노숙자의 불룩한 배와
그러고 보니 서울구경 하루만에 모녀노숙자처럼 황폐해져서 아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곤 했는데 기차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져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우리를 냄새나는 잠의 배설물로 오해하더라고 침까지 흘리며 쿨쿨쿨 잘 잤다 기차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깊은 잠에 들게 했으리라 봄으로부터 출발한 기차의 몸속이 너무 따뜻해서.
월간 『현대시학』 2009년 11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병호 시인 / 리트머스 루메 (0) | 2019.09.27 |
|---|---|
| 이성부 시인 / 백제행 (0) | 2019.09.26 |
| 박강 시인 / 오디션ㆍ2 외 1편 (0) | 2019.09.26 |
| 이선형 시인 / 침묵 외 1편 (0) | 2019.09.26 |
| 조정권 시인 / 黑板 (0) | 2019.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