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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렬 시인 / 죽음을 기다리는 즐거움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에게
암고양이가 꼼지락거리는 새끼 몇 마리와 함께 비둘기 똥이 괴락이 된 해진 소파를 할퀸다 전구들이 반 이상 깨져버린 증권시세전광판 주위엔 그 시절 빛바랜 파장전지들이 낙엽처럼 흩어지고 세월의 때가 덧칠된 회벽에는 3년 전 캘린더 걸이 누런 이빨로 희죽이고 있다 총을 깨진 창틀 위로 걸치니 예상각이 150도쯤 나온다 연단이 틀어질 것을 감안해도 최소 120은 되겠다
‘발포 후 30초 안으로 나가며 여의치 않을 땐 총을 버린다 뛰쳐나갈 방향은 인수르헨떼 쪽이며 5분 내 500m이상 달린다’ 혀가 마르도록 수칙을 되새김질한다
총알 세 발을 바카르디 미니 병과 함께 창틀 위에다 올린다 수분 후 뜨거운 냄비 속 미꾸라지가 차가운 두부를 파고들듯 목표의 몸을 헤쳐 나갈 것들이다 축축해진 손으로 하시시를 꺼내 불을 당긴다 하나, 둘, 마이크테스트음에 바카르디 병이 칭얼된다 훅~ 빨아당긴다 어지럽다 순간 카메라의 전원이 나가버린 듯, 영상이 정지된다 난 S자가 뱀처럼 새겨진 총알을 재생버턴인 양 꾹 눌러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시시에다 바카르디 한 병을 비웠더니 어지럽다 이래선 안 되는데…… 구석에 삐딱이 금 간 거울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그 하이드를 비추고 있을 것이다 하시시 꽁초를 마지막 여인의 입술 빨듯 하니 파블로프의 개처럼 턱 아래 침이 괸다 유리창, 달력, 책상…… 온 방이 빙글 돈다 머리를 쥐 뜯으며 다시 황달 기 있는 눈을 스코프로 가져간다 아, 보인다 연단 주위에 쫙 깔려있는 경찰들 사이로 목표가…… 콧수염에 대머리, 차기 대통령후보 까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흰색 양복에 까만 넥타이, 옷차림 또한 전형적이다 최선의 각도를 위해 총을 우측 창틀로 옮긴다 들여다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여전히 그는 그 자리에 있다 입술을 깨물며 접안고무에다 눈을 가져간다 크로스에 목표가 잡힌다 둥글게 심장 부위를 확대한다 하나, 둘, 셋…… 쾅! 고양이들 소스라치고 언제 비둘기 날아들었는지 미친 듯 날갯짓을 해댄다 맞았다…… 오, 맞았습니다 신이시여! 목표는 연단 뒤로 나동그라져버린다 쓰러지는 목표를 추적하기 위해 총 끝을 앞으로 기울여본다 스코프에 구부러진 그의 몸통이 잡힌다 아, 근데 이건 또 뭔가 시체가 일어나고 있잖아! 그때 얼핏 스코프에 또 다른 목표 하나 하늘거린다 속았다 방탄복을 착용한 변장 경호원들이다
손이 떨리니 총 끝이 심하게 흔들린다 그래 하시시…… 하시시가 어디 있어…… 더듬더듬 창틀의 꽁초를 집어 들고 헉헉- 빨곤 팔딱대는 손가락으로 총알 한 발을 약실에다 재운다 다시 붉은 눈을 스코프로 가져간다
아, 근데 이건 또 뭔가 크로스에 잡힌 건 저쪽 저격수……? 순간 식은땀이 찬 바위에 이슬처럼 돋는다 오, 사랑하는 하느님!, 막상 방아쇠를 당기려니 손가락에 힘이 없습니다
쾅~! ...쾅~! 총 맞은 기분 하시시보다 몇 배 짜릿하다 어지럽지만 기분은 좋다 아니 어지러우니 기분이 좋다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딛곤 굴러버린다 다시 몸을 일으켜 기름 탱크가 새는 자동차처럼 피를 흘리며 차도로 향한다 내 눈은 결코 변하지 않을 멕시코의 수렁을 간과하며 내 귀는 멕시코에서의 총소리를 한 마리 새 지저귐으로 듣는다
여전하다 차들은 포뮬러카인 양 달리고 사람들은 제 갈 길에 바쁘다 오로지 낯선 풍경은 살과 뼈가 드러난 내 몸뚱어리인 양 한 행인 크고 둥근 눈으로 다가온다
-¡Dios mío, qué sangre!(오 하느님, 저 피 좀 봐!)
-의지대로 되는 게 어디 하나라도 있더냐 끝으로 내 목숨만은 내 의지대로 하마- 입술 끝에 매달린 불씨 살아있는 하시시를 혀로 말아 삼킨 뒤 바지주머니에서 22구경 데린저를 꺼낸다 머리에다 그 굶주려하는 총구를 박고 혁명의 상징인 레포르마 대로에서 내 최초의 의지와 최후의 의식을 이을 결빙의 방아쇠를 당긴다 하나 둘…… 콰앙~!
긴 시간이었을까 총알이 날기 시작해 내 해골에 박히기까지…… 아바탐사카(Avatamsaka)의 10시제 중 열 번째 시제인 찰나에 불과할 것이건만 나 살아온 31년보다 더 길게 느껴짐은…… 이어 내 눈꺼풀, 월식인 양 내려지고 세상은 마지막 조명이 꺼져버린 텅 빈 무대처럼 저 멀리서 캄캄하다
*
나우깔판 형무소 콘덴서 감방 옆 뻘쭘 서 있는 농구골대 하나, 점령군 앞에서 스스로 내려지는 피점령지 여인의 찢겨진 바지 같다 백보드 뒤편엔 철자 하나가 지워진 ‘조 같은 멕시코’라 써진 낙서, 써다가 받혀주던 그 무엇, 와락 무너져 내렸는지 획의 끄트머리 흐릿하고……
영(零)의 개념을 최초로 고안한 마야인들은 죽음을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연결하는 연결점, 영에 이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죽음은 영이 되는 것이고 영은 이승과 저승의 분기점이니 그들의 생은 그 영을 기다리는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살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이제 난, 머리에 박혀있는 그 총알 크기의 바오밥나무 씨앗을 농구골대 한 켠에다 심는다 그 나무 자라 죽은 쥐 모양의 열매 고양이처럼 웃을 즈음 ‘조 같은 멕시코’는 ‘보석 같은 멕시코’로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2월호 발표
구광렬 시인 / 메르세데스 소사*
1.
지구반대편 구석에서 노래 한 줄로 깨달았습니다 구석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건만 세상은 구석을 향해 닫혀있다는 걸
세상 힘든 것들 구석으로 몰리건만 묵묵히 구석은 그 어깨들을 받쳐준다는 걸
수평선에도 구석이 있고 그 면도날 같은 파도의 한 줄 구석에도 등짝을 곧게 펴는 고기들이 산다는 걸
갈대의 울부짖음을, 못에 박힌 빈 바가지의 달가닥거림을, 구석에서 태어난 바람은 입이 꽉 틀어 막힌 것들을 대신해 소릴 내 준다는 걸
그 바람 앞에선 작고 낮을수록 더 떳떳할 수 있다는 걸
2.
사람의 목구멍이 골짜기란 걸 알았습니다 물이 흐르고 새가 지저귀고 꽃이 피는
사람의 목소리가 바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물소리, 새소리, 꽃향기를 코, 귀에까지 실어다주는
사람들의 삶이 조각조각 퍼즐이란 것도 알았습니다 한 조각만 빠트려도 문제를 풀 수 없는
아, 골짜기에서 바람이 불듯 사람의 목구멍에서 노래가 치솟음을 보았습니다
그 노래, 떨어져나간 퍼즐조각 같은 목숨들을 불러 모아 또 한 번 神의 얼굴로 풀어내는
*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아르헨티아 출신의 저항가수, 2009년 10월 5일 타계
시집 『불맛』(실천문학사, 20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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