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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광렬 시인 / 죽음을 기다리는 즐거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9. 28.

구광렬 시인 / 죽음을 기다리는 즐거움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에게

 

 

  암고양이가 꼼지락거리는 새끼 몇 마리와 함께

  비둘기 똥이 괴락이 된 해진 소파를 할퀸다

  전구들이 반 이상 깨져버린 증권시세전광판 주위엔

  그 시절 빛바랜 파장전지들이 낙엽처럼 흩어지고

  세월의 때가 덧칠된 회벽에는 3년 전 캘린더 걸이

  누런 이빨로 희죽이고 있다

  총을 깨진 창틀 위로 걸치니 예상각이 150도쯤 나온다

  연단이 틀어질 것을 감안해도 최소 120은 되겠다

 

  ‘발포 후 30초 안으로 나가며

  여의치 않을 땐 총을 버린다

  뛰쳐나갈 방향은 인수르헨떼 쪽이며

  5분 내 500m이상 달린다’

  혀가 마르도록 수칙을 되새김질한다

 

  총알 세 발을 바카르디 미니 병과 함께 창틀 위에다 올린다

  수분 후 뜨거운 냄비 속 미꾸라지가 차가운 두부를 파고들듯

  목표의 몸을 헤쳐 나갈 것들이다

  축축해진 손으로 하시시를 꺼내 불을 당긴다

  하나, 둘, 마이크테스트음에 바카르디 병이 칭얼된다

  훅~ 빨아당긴다

  어지럽다

  순간 카메라의 전원이 나가버린 듯, 영상이 정지된다

  난 S자가 뱀처럼 새겨진 총알을 재생버턴인 양 꾹 눌러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시시에다 바카르디 한 병을 비웠더니 어지럽다

  이래선 안 되는데…… 구석에 삐딱이 금 간 거울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그 하이드를 비추고 있을 것이다

  하시시 꽁초를 마지막 여인의 입술 빨듯 하니

  파블로프의 개처럼 턱 아래 침이 괸다

  유리창, 달력, 책상…… 온 방이 빙글 돈다

  머리를 쥐 뜯으며 다시 황달 기 있는 눈을 스코프로 가져간다

  아, 보인다 연단 주위에 쫙 깔려있는 경찰들 사이로 목표가……

  콧수염에 대머리, 차기 대통령후보 까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흰색 양복에 까만 넥타이, 옷차림 또한 전형적이다

  최선의 각도를 위해 총을 우측 창틀로 옮긴다

  들여다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여전히 그는 그 자리에 있다

  입술을 깨물며 접안고무에다 눈을 가져간다

  크로스에 목표가 잡힌다 둥글게 심장 부위를 확대한다

  하나, 둘, 셋…… 쾅!

  고양이들 소스라치고 언제 비둘기 날아들었는지 미친 듯 날갯짓을 해댄다

  맞았다…… 오, 맞았습니다 신이시여!

  목표는 연단 뒤로 나동그라져버린다

  쓰러지는 목표를 추적하기 위해 총 끝을 앞으로 기울여본다  

  스코프에 구부러진 그의 몸통이 잡힌다

  아, 근데 이건 또 뭔가 시체가 일어나고 있잖아!

  그때 얼핏 스코프에 또 다른 목표 하나 하늘거린다

  속았다 방탄복을 착용한 변장 경호원들이다

 

  손이 떨리니 총 끝이 심하게 흔들린다

  그래 하시시…… 하시시가 어디 있어……

  더듬더듬 창틀의 꽁초를 집어 들고 헉헉- 빨곤

  팔딱대는 손가락으로 총알 한 발을 약실에다 재운다

  다시 붉은 눈을 스코프로 가져간다

 

  아, 근데 이건 또 뭔가 크로스에 잡힌 건 저쪽 저격수……?

  순간 식은땀이 찬 바위에 이슬처럼 돋는다

  오, 사랑하는 하느님!, 막상 방아쇠를 당기려니 손가락에 힘이 없습니다

 

  쾅~!  

  ...쾅~!

  총 맞은 기분 하시시보다 몇 배 짜릿하다

  어지럽지만 기분은 좋다 아니 어지러우니 기분이 좋다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딛곤 굴러버린다

  다시 몸을 일으켜 기름 탱크가 새는 자동차처럼 피를 흘리며 차도로 향한다

  내 눈은 결코 변하지 않을 멕시코의 수렁을 간과하며

  내 귀는 멕시코에서의 총소리를 한 마리 새 지저귐으로 듣는다

 

  여전하다 차들은 포뮬러카인 양 달리고 사람들은 제 갈 길에 바쁘다

  오로지 낯선 풍경은 살과 뼈가 드러난 내 몸뚱어리인 양

  한 행인 크고 둥근 눈으로 다가온다

 

  -¡Dios mío, qué sangre!(오 하느님, 저 피 좀 봐!)

 

  -의지대로 되는 게 어디 하나라도 있더냐

  끝으로 내 목숨만은 내 의지대로 하마-

  입술 끝에 매달린 불씨 살아있는 하시시를 혀로 말아 삼킨 뒤

  바지주머니에서 22구경 데린저를 꺼낸다

  머리에다 그 굶주려하는 총구를 박고 혁명의 상징인 레포르마 대로에서

  내 최초의 의지와 최후의 의식을 이을 결빙의 방아쇠를 당긴다

  하나 둘…… 콰앙~!

 

  긴 시간이었을까

  총알이 날기 시작해 내 해골에 박히기까지……

  아바탐사카(Avatamsaka)의 10시제 중 열 번째 시제인 찰나에 불과할 것이건만

  나 살아온 31년보다 더 길게 느껴짐은……

  이어 내 눈꺼풀, 월식인 양 내려지고 세상은 마지막 조명이 꺼져버린 텅 빈 무대처럼

  저 멀리서 캄캄하다

 

 *

 

  나우깔판 형무소 콘덴서 감방 옆 뻘쭘 서 있는 농구골대 하나,

  점령군 앞에서 스스로 내려지는 피점령지 여인의 찢겨진 바지 같다

  백보드 뒤편엔 철자 하나가 지워진 ‘조 같은 멕시코’라 써진 낙서,

  써다가 받혀주던 그 무엇, 와락 무너져 내렸는지 획의 끄트머리 흐릿하고……

 

  영(零)의 개념을 최초로 고안한 마야인들은

  죽음을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연결하는 연결점,

  영에 이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죽음은 영이 되는 것이고 영은 이승과 저승의 분기점이니

  그들의 생은 그 영을 기다리는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살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이제 난, 머리에 박혀있는 그 총알 크기의 바오밥나무 씨앗을

  농구골대 한 켠에다 심는다

  그 나무 자라 죽은 쥐 모양의 열매 고양이처럼 웃을 즈음

  ‘조 같은 멕시코’는 ‘보석 같은 멕시코’로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2월호 발표

 

 


 

 

구광렬 시인 / 메르세데스 소사*

 

 

  1.

 

  지구반대편 구석에서 노래 한 줄로 깨달았습니다

  구석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건만 세상은

  구석을 향해 닫혀있다는 걸

 

  세상 힘든 것들 구석으로 몰리건만

  묵묵히 구석은 그 어깨들을 받쳐준다는 걸

 

  수평선에도 구석이 있고

  그 면도날 같은 파도의 한 줄 구석에도

  등짝을 곧게 펴는 고기들이 산다는 걸

 

  갈대의 울부짖음을,

  못에 박힌 빈 바가지의 달가닥거림을,

  구석에서 태어난 바람은

  입이 꽉 틀어 막힌 것들을 대신해 소릴 내 준다는 걸

 

  그 바람 앞에선

  작고 낮을수록 더 떳떳할 수 있다는 걸

 

  2.

 

  사람의 목구멍이

  골짜기란 걸 알았습니다

  물이 흐르고 새가 지저귀고

  꽃이 피는

 

  사람의 목소리가

  바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물소리, 새소리, 꽃향기를

  코, 귀에까지 실어다주는

 

  사람들의 삶이

  조각조각 퍼즐이란 것도 알았습니다

  한 조각만 빠트려도

  문제를 풀 수 없는

 

  아, 골짜기에서 바람이 불듯

  사람의 목구멍에서

  노래가 치솟음을 보았습니다

 

  그 노래,

  떨어져나간 퍼즐조각 같은

  목숨들을 불러 모아

  또 한 번 神의 얼굴로 풀어내는

 

 *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아르헨티아 출신의 저항가수, 2009년 10월 5일 타계

 

시집 『불맛』(실천문학사, 2010) 중에서

 

 


 

 

 구광렬 시인

동물을 유난히 좋아해 일찍이 파타고니아에서 목동생활을 하고 싶었던 청년시절, 멕시코로 건너갔다. 멕시코국립대학에서 중남미문학을 공부(문학박사)한 뒤 1986년, 멕시코 문예지 “마침표(El Punto)” 및 “마른 잉크(La Tinta Seca)”에 시를, 멕시코국립대학교 출판부에서 시집 “텅 빈 거울(El espejo vacío)”을 출판하고부터 중남미시인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오월문학상 수상과 함께 현대문학에 시 ‘들꽃’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하늘보다 높은 땅(La tierra más alta que el cielo)”, "팽팽한 줄 위를 걷기(Caminar sobre la cuerda tirante)" 등 몇 권의 스페인어시집과 “불맛”, “나 기꺼이 막차를 놓치리” 등 몇 권의 국내시집, 장편소설 "뭄(Sr.Mum)", “가위주먹” 등과 기타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체 게바라의 녹색노트” 등 문학관련 저서 수십 권이 있다. UNAM동인상, 멕시코 문협 특별상, 브라질 ALPAS ⅩⅩⅠ 라틴시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8년 aBrace 중남미시인상 후보로 오른 뒤, 2009년에도 후보에 올랐으며, 저서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이 젊은 비평가들에 의해 ‘2009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문수산 기슭에서 좋아하는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며 울산대학교, 동리목월문예창작대 등지에서 시창작법과 중남미문학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