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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규 시인 / 물의 寺院
사소한 것들이 일렁거리는 물의 寺院 지치고 병든 마음들을 풀어놓으면 생기를 얻어 지느러미를 흔들며 노는 곳, 붉던 눈동자가 맑아지는 곳,
수면 밑바닥에서 부글부글 거품으로 올라오는 고요를 낚는 기분으로 내가 물가에 앉아있고 몽유의 나날에 시달려 시간의 회초리에 퍼렇게 멍든 등짝을 내보이고 앉아있고
태양이 나온 자궁처럼 가랑이를 벌린, 거웃같이 수초들이 자라 가파른 수음을 하고 광활한 먼지의 대륙을 건너온 바람이 다 뭉개져 간신히 물 위에 엎어지는, 물의 寺院
내 마음들에는 왜 뼈가 없는가 불끈 솟구쳐 흔들리지 않게 하는 그런 뼈, 뼈 없는 물고기가 되어 내 속에서 숨 막혀 산다 흉터는 물고기의 화석이다
물의 寺院에 와서 지치고 병든 물고리를 방생하는 내 손에 거머리가 달라붙어 피를 빤다 피 몇 방울 물의 寺院에 번져 오래전 방생했던, 이제는 물의 寺院이 버거워하는 큰 물고기가 쏜살같이 달려온다 뼈가 생겨난 저 육식의 아가리가 한때 내 속에 살던 것인가
시집 『아무 망설임 없이』(문학의전당, 2010) 중에서
김충규 시인 / 내 고양이는 지금 어느 골목에 있을까
몇 해 전, 비 오는 어슬어슬 겨울 골목에서 몸은 떨고 있었으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던 그 고양이, 나는 몸은 안 떨었으나 눈빛은 흔들렸다
―너, 내 고양이 할래? 내가 했던 혼잣말, 사는 일에 좀 지쳐 있었던 내게 사람이 아닌 벗이 필요했는지도……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고양이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손으로 등을 어루만지기만 해도 제 혀로 내 손등을 부드럽고 미세하게 핥아줄 것이다; 달팽이의 젖은 혀 같을 느낌,
―너, 내 고양이 할래? 내가 흔들리는 눈빛을 간신히 수습하며 바라볼 때 고양이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너, 내 사람 할래? 그 눈빛에 그런 메시지가 들어 있다고 착각하고 싶었던, 내 앞에서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던, 그 고양이, 우리는 비에 젖어서 마를 사이도 없이 젖어서
(둘이…각자의 생활 영역을 벗어나 멀리 멀리 걸어가고 싶었다. 물론 고양이도 원한다면)
너는 네 혀로 내 손등을 핥든 안 핥든 나는 내 혀로 네 발등을 핥든 안 핥든 그리 한 번쯤 서로의 곁이 되어보고 싶었던,
지금, 어디 있니? 내 고양이
시집 『아무 망설임 없이』(문학의 전당, 20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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