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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유진오 시인 / 창(窓)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2.

유진오 시인 / 창(窓)

 

 

 

어둠을 향(向)하여

정기 없는 눈처럼

뻐꿈히 열린 창(窓)

 

이그러진 담베락을 의지하고

조으는 듯 까부라질 듯

덤덤히 말이 없다

 

아지 못할 냄새를 풍기며

가슴을 조이게 하는

 

낡은 성(城) 밑 군풀 우거진 곳에

해와 바람은 등져도

비에는 명색도 없는 창(窓)

 

성(城)너머 해사한 지붕 아래

쏘는 듯 화끈하는

제마다 주실 달은

아름다운 창(窓)들

 

성(城)을 사이에 터를 잘라

창(窓)들과 창(窓)들은

어제도 오늘도 바라만 보고 있다

 

 

여름내 뿌려치는 비바람 속에

간간히 울음 소리마저 풀끼없는

어린것 소리에 시달려

한여름 가고

 

퍼어런 눈자위

고달픈 얼굴이

한숨을 내품는 창(窓)으로

 

성벽(城壁) 돌틈에

부스러지는 모래와 함께

삐라처럼 가랑잎이 날러들어 가고

가랑잎처럼 삐라가 날러들어 가고

 

얕은 하늘 고요한 밤에

솜눈이 송이 송이

히멀건 창(窓)을

녹힐 듯 얼어붙일 듯이 두다릴 무렵

 

창(窓) 안에선

어둠을 타서 그림자인 양

미끄러져 들어간 사나이

굵은 목소리 영남(嶺南) 사투리가

섞여 들리는

 

이날부터

종이 소리

무엇을 굴리는 소리

밤을 도와 그치지 않고

 

밤마다 저녁마다

힘차고 무거운 노래 소리

나즉히 들리기 시작한 후엔

 

창(窓)은 어둠을 뚫고

멀리 험한 풍랑을 헤아리는

등대(燈臺)처럼 자꾸 높아만 갔다

 

때로는 흐린 밤

구름 속에 빛나는

별인 양 떨렸고

 

혹시는 미움에 치떨려

핏발선 눈처럼

성(城) 너머 휘창한 창(窓)들을

달려들 듯 쏘아보며

 

사나이와 사나이

에미나의 눈길이 마주칠 때

싸늘한 비수(匕首)의 흐름이

미운 놈의 가슴팍에

금을 그어 놓는다

 

 

엔진 소리 나면

헤트라이트  불길이

굶주린 이리처럼

굽은 성(城) 윗길로 달려왔고

 

대문(大門) 소리 찌르릉

여닫는 소리와 함께

혀 꼬부라진 소리 들린 뒤

 

이내 석류(石榴)를 터트린 듯

기녀(妓女)의 웃음소리

취한 마음 흔들리는 노래 소리

연이어 나고

 

평안도(平安道) 함경도(咸鏡道) 사투리

비―루 거품처럼

호화로이 떠돌고

 

비오는 날

눈오는 밤

철을 잊은 밤마다의

명절(名節)이 불을 밝히고

 

노랫가락이 잦으면

째즈가 풍척이자

치마 꼬리 휘감고

얼싸안은 사람들의

그림자 그림자

 

눈부시는 창(窓)너머

무쇠 난간(欄杆) 베란다

성(城) 위 송림(松林)길에

어즈러이 맴돌아 간다

 

때론 회의(會議)가 있어

우와― 물결처럼 이는

환호(歡呼)와 박수(拍手) 소리

그리곤 술잔 부딪는 소리

장고 소리 웃음 소리

 

눈물도 한숨도 없고

눈 비 바람 모오두

헤아려 지내가는 무풍지대(無風地帶)

울음 소리라곤

대문(大門) 안과 밖에 있는

귀를 찌르는 세파트의 울음뿐

그러나 이것도 울음은 아니어

 

아름다운 창(窓) 취한 듯 어른거리는 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평안도(平安道) 사투리와

남한(南韓)을 방송(放送)하는 라디오 소리

 

창(窓)앞 베란다 쇠난간 우엔

포기 포기 꽃나무

시들을 듯 조을고

 

창(窓)마다 포도넝쿨마냥

쇠넝쿨이 세라어

바람도 비도 고양이도

도적도 피해버리는

 

이 창(窓)으로 해

밤마다 마을 사람들의 잠은

늘 설어도

창(窓)은 취한 듯 노(怒)한 눈길로

성(城)아래 초라한

창(窓)들을 굽어다 본다.

 

IV

 

낡은 성(城) 너머

무딘 연륜(年輪)이 돌아간 숲길

여기 무서운 권력(權力)이

눈을 부릅뜬 창(窓)과

 

성(城) 밑 무시로

바스러져 내리는 모래와

천년(千年) 묵은 예속(隸屬)의 도덕(道德)으로

이내 찍어 눌릴 듯한

무수한 창(窓)들과 창(窓)들은

 

성(城)을 사이에 터를 갈라

말이 있을 수 없고

말 쓸데없어

 

거기 반짝이는 불빛이

부딪쳐 불꽃을 일으켜

하늘과 땅

낡은 성(城)과 숲길이

파아랗게 타오를 날

이 날을 바래

묵묵한 침묵이

어두운 밤과 밤을 밝힌다.

 

미어진 문풍지 파닥이는

쇠넝쿨도 나무 토막도 가리지 않은

초라한 창(窓)들은

이젠 아무것도 잃을 것 없기에

미움과 함께

은연히 견디어 가고

 

세파트와 쇠넝쿨과

서슬 푸른 권력(權力)이

겹겹이 에워싼 창(窓)들은

불안(不安)하기에

저녁마다 촉광(燭光)을 돋군다

 

아아 그러나

도적과 불안(不安)을 막기 위하야

쇠줄 늘인 창(窓)들은

실상은

비와 바람에 떨며

쥐와 빈대로 더불어

설움에 찌들은

저 창(窓) 안에서

얼마나 악착스리

알찌게 빼앗어 갔던 것인가

 

나의 사랑하는

불상한 동무들은

이러한 창(窓) 안에서

굶주려 숨넘어갔다.

 

그러기에

도적이 두려워

어둠이 무서운 아름다운 창(窓)들엔

권력(權力)과 함께

부유(富裕)한 도적이 살지 않느냐

 

부딪쳐 파아랗게

타오를 날

이날이사 나즉한 목소리는

우렁찬 나팔처럼 울리고

하늘을 찌르는 불꽃은

우리의 기(旗)발

어둠을 뚫고

아름다운 창(窓)들

그들이 사랑하는 창(窓)들은

철창(鐵窓)이 되리라

 

아아 이것은 우연(偶然)이 아니다

강도(强盜)와 부자(富者)에겐

철창(鐵窓)을 주라.

 

창(窓), 정음사, 1948

 

 


 

 

유진오 시인 / 초상(肖像)

 

 

해어진 옷자락이 가이 없어서

그러는게 아니란다 아가야!

네 부르는 노래가 구슬퍼서

그러는 것도 아니란다

 

고무신 한 켜레 얻어신지도 못한

네 맨발이 부릍고 찢기어서

혹시는 네 얼굴 네 눈이

핏기 없고 초라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네 어버이가 그러하고

또 네 조상이 그러했던 탓으로

너도 또한 그 자손(子孫)의 혈통(血統)으로만도

언제나 굶주리는 종족(種族)이라서

그러는 것도 물론 아니다

 

네 속에 감추어진

슬픈 역사(歷史)의 구김새를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도 아니란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남모르게 흘리는 네 눈물을 알기에

내 모습을 네게서 보고

잊었던 나를 찾는 것 같애서

그러는 것으로 알아다오 아가야

 

일찌기 내가 사랑하기를 배운 것도

너와 같은 이에게 배웠고

내 슬픈 버릇도 그러했느리라

 

내 속에 깃들이는 먼 옛날과

네 모습이 가지는 아련한 느낌은

내가 너를 사랑케 하고 슬프게 한다

 

때로는 미워도 하느리라

굳이 억누르는 속삭임이 튀어나올 때

나는 너를 주저(呪咀)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는 씰개를 깨미는 듯한

회오(悔悟)로 혀를 채웠느니라

 

그러나 이제는

네 모습이 향(向)할 길이 틔었다

기쁨보담도 다사로운 곳에 이르는 길이

 

내 사랑도 님의 모습을 머얼리 뵈온 듯이

걸음걸이 바빠져 간다

돌뿌리에 채일 줄도 모르고

뛰고 싶다 날으고 싶다

 

허나 너는 그 가냘핀 몸 안에

날카로운 이지(理智)를 갖추고

조심성스럽고 침착하다

그 위엄 아래 능히 나를 누르고

 

네 가슴 속에 불룩한 봉우리가

피어 오르는 그 길 우에

내 모습 또한 따러 피리라

오! 아가야 그 길 우에

 

창(窓), 정음사, 1948

 

 


 

유진오 시인 (兪鎭五.1922∼1949)

전라북도 완주 출생. 호 무헌(無軒). 1941년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문화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45년 8ㆍ15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 1946년 2월 25일 학병추모행사에 <눈 감으라 조용히>를 낭독하고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다. 1946년 김광현, 이병철, 박산운 등과 전위시집(前衛詩集) (노동사)을 간행하였다. 1948년 10월 20일 발생한 여순반란사건 이후 반란군을 중심으로 ‘지리산유격대’가 형성되면서 1949년 초에 남로당 중앙지도부는 문화부장 김태준(金台俊ㆍ45), 시부(詩部) 유진오(兪鎭五ㆍ26), 음악부(音樂部) 유호진(劉浩鎭ㆍ21), 영화부(映畵部) 홍순학(洪淳鶴ㆍ29) 등을 파견해서 유격대의 문화 활동을 담

당하게 하는데, 이것이 당시 유명한‘지리산문화공작대사건’이다. 이들은 1949년 모두 체포되어 9월 27일부터 4일 동안 유진오, 김지회의 처 조경순 등과 함께 공개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후 감형되었으나, 그 이후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이우태(李愚兌)의 빨치산 수기 남부군(南部軍) 에 의하면 유진오는 6ㆍ25 당시 노동당 전북도당 산하 빨치산으로 활동하던 중 사망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1950년 3월 전주형무소로 이감되었다가, 6.25 발발과 함께 행방불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