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시인 / 정오의 마음
조금만 더 있자 지금 꼭 사랑하지 않으면 안 돼 저녁이면 이 느낌이 사라질 거야
마리는 한 팔로는 에리카를 사랑하고 가짜 팔로는 냉소한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괜찮은데 네크라인이 맘에 들지 않아 다른 창을 연다
에리카의 머리가 똑바르지 않다는 것을 사랑하면서 관찰한다 첫 팔로우니까
너는 왜 항상 한쪽으로 머리를 기울이니? 사진을 봐봐 벽 모서리에 찢어 붙여놓은 화보 남자애들 같잖아 한쪽은 진짜 브라운 한쪽은 진짜 블루
우리는 너무 개인주의자인데 관계를 하니까 모순적이야 개인적 평판이 좋기를 열망한다면 한 사람의 연인으로 살아갈 수 없어
에리카의 부모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려고 했다 한 남자의 아내로 사는 데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그래서 예술을 하니? 예술혼과 장사혼 사이에서 혼이 나간 마리가 심드렁하게 에리카를 바라본다
비현실적일 정도의 사랑의 관계는 비현실적으로 임시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임시적이다 하지만 마리는 규정을 극도로 싫어하므로 보류하는 체질
에리카, 너를 사랑해 사랑은 죽어 없어지지 않아 우리가 온라인 쇼핑몰을 옮기듯이 그저 이동할 뿐이지
계간 『모:든 시』 2019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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