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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사도직현장에서] 죄를 비추는 거울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

by 파스칼바이런 2019. 12. 16.

[사도직현장에서] 죄를 비추는 거울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

정월기 신부(서울대교구 광장동본당 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19.12.15 발행 [1543호]

 

 

▲ 정월기 신부

 

 

신자들이 예수님과 자캐오의 만남(루카 19,1-10)에 관한 성경을 묵상하고 나누는 모습을 보면 많은 경우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캐오나 군중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군중이 예수님을 보고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린 것처럼 자신도 투덜거린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자캐오가 키가 작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내 자신들의 부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또한, 자캐오처럼 재산의 반을 나누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부끄러워한다. 성경을 읽고 자신들을 돌아보며 반성하기만 한다면 성경이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우울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슬픈 소식으로 전락하게 된다.

 

성경을 기쁜 소식으로 대하는 지름길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무에 올라간 자캐오를 쳐다보시고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고 하신다. 우리는 자캐오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과 그 음성을 듣고 기쁘게 내려오는 자캐오 사이에 오고 가는 만남의 기쁨과 역동성을 접하게 된다. 내려오라는 초대와 집에 머물겠다는 파격적인 예수님의 제안에서 자캐오는 드디어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 하던 예수를 사랑하는 ‘임’으로 만나게 되는데 그것도 자신의 집을 온통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는 분으로 만나는 것이다.

 

세관장 자캐오에게 재산의 반을 나누게 하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주님의 보시는 눈길과 자캐오라는 이름을 불러주시는 목소리와 가정 방문은 자캐오로 하여금 이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존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자캐오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 성경은 자신의 죄를 비추는 거울이라기보다는 말씀으로 오셔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만나게 해주는 기쁜 소식이다.

 

“너희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나는 너희를 업고 다녔다. 너희는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비록 백발이 성성해도 나는 여전히 너희를 업고 다니리라. 너희를 업어 살려 내리라.”(이사 46,3-4)

 

주님은 오늘도 나와 동행하시고 지치고 쓰러질 때마다 업고서 당신의 사랑의 여정을 계속하신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