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이콘] 세 번째 이야기, 성모님의 이콘 (2)

by 파스칼바이런 2021. 1. 1.

[이콘 – 세 번째 이야기] 성모님의 이콘 (2)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서울대교구 이콘 연구소 소장)

 

 

1. 표상의 성모

 

 

지난 호에 소개한 것과 같이 성모님께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하느님과 인류의 중재자로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오란스’ 라고 하는 형태의 이콘이 4~5세기경에는 성모님의 가슴에 아기 예수가 그려진 ‘표상의 성모’라는 변형된 형태로 등장한다. 이는 성모님이 두 손을 모두 들고 있기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품고 있는 형상으로 이사야서 7장 14절의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라는 구절을 나타낸 것으로 이 성서 구절의 표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징’, 또는 ‘표상의 성모’라고 부르며 때로는 “지극히 거룩하신 분 the Great Panagia(All Holy)” 또는 “당신의 자궁은 하늘도 다 담지 못할 분을 품었기에 당신은 하늘보다 광활합니다.”라는 비잔틴 찬가를 근거로 “하늘보다 광활한(Platytera ton ouranon) 분”이라고도 불린다. 이 형태의 이콘은 반신상으로도 그려지고, 성모님이 서 있는 형태의 전신상으로도 그려진다.

 

러시아에서는 Kiev로부터 Yaroslavl로 전해지며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특히 12세기에는 노브고르드라는 도시를 수즈달 군이 공격했을 때 노브고로드 시민들은 이 표상의 성모 이콘을 성벽에 걸고 성모님의 도움을 청했고, 이때 수즈달 군인들은 시력을 잃고 대패하는 기적이 일어나 이를 계기로 표상의 성모는 특히 노브고르드 시에서 크게 공경을 받게 되었다. 또한 1352년에는 흑사병으로부터 노브고로드를 다시 한번 더 구하였기에 지금까지도 노브고로드에서는 11월 27일을 표상의 성모 성화 축일로 정하고 도시의 수호자로 크게 공경하고 있다.

 

이 표상의 성화는 때로는 성모님의 머리 좌우에 두 명의 천사가 날고 있는 모습을 함께 그리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천사들은 동방교회의 성찬 예식에서 에피클레시스 이후 부제들이 영대를 목에 걸고 가슴에서 십자형으로 교차하여 고정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즉 이 성모 성화는 신성한 성찬 전례도 암시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의 가슴 중앙에 묘사한 그리스도 임마누엘은 마치 둥근 제병에 새겨진 주님의 모습처럼 성찬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이사야서에 예언된 임마누엘은 바로 지상의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 오셨음을 나타낸 것으로, 하늘과 땅 사이의 중재자이신 마리아를 통해 그녀의 가슴에 품고 있는 주님께서 지상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이다.

 

2.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속의 성모

 

 

모세는 떨기나무가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고 이글거리는 불꽃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 모습을 묘사한 동방교회의 성화들에서는 그 불꽃 속에 앞서 소개한 표상의 성모 또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그리스나 러시아 등 동방의 정교회 국가들을 방문하다보면 이 낯선 모습에 가톨릭 신자들 특히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적잖이 당혹해한다. 모세와 성모님은 어떤 연관 관계인가?

 

동방의 비잔틴 전통에서 이렇게 묘사하는 이유는 나무가 불에 타고 있지만 실제로는 타지 않고 있는 불가능한 현상을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보여 주셨듯이 성모님도 처녀였지만 동정을 유지하면서 아이를 낳은 불가능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행하셨다는 것으로, 모세에게 보여주신 이 기적은 미래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에 대한 예표로 하느님은 못 하시는 일도 없고, 불가능함도 없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드러내 주는 표징이라는 것이다.

 

동방의 신학자들은 호렙산의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의 불꽃 속에서 처녀성의 손상을 전혀 입지 않고 그리스도를 낳은 지극히 거룩한 테오토코스의 모습도 생각했다. 그래서 초기의 성화에서는 하느님의 어머니를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 속 중앙에 거룩한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형상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육화 이전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주신 표징은 빛, 바람, 구름, 불 그리고 말씀이었다. 따라서 모세가 접한 모습도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의 불길과 그 속에서 들리는 말씀(로고스)이었다.(탈출 3,4)

 

요한복음 첫 머리에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라는 문장이 나오듯이 이렇게 말씀이 인간이 되심, 즉 동정녀의 잉태를 이렇게 불길 속에 묘사하여 그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 속에서 들려온 그 말씀, 바로 그분이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동방의 교회들은 예수님의 변모 때에 보여주었던 창조되지 않은 빛으로 묘사된 영광의 하느님의 실체를 거룩한 교부들과 공의회의 전통에 따라 모세의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로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주석가들은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했지만 그들의 신앙을 결코 꺾지 못하였고, 또한 그들의 신앙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음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동방 정교회에서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예표하는 찬송가와 신학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3. 세 손의 성모(러-Богородица Тројеручица, 그-Παναγία Τριχερούσα)

 

 

이 형태의 이콘은 티츠빈의 성모 성화 유형의 하나로 아기 예수님이 티츠빈의 성모와 반대 방향으로 위치하며 성모님의 머리와 손 또한 이 예수님을 향하여 반대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이름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성모님의 손이 세 개로 그려져 있다. 이 유형의 성모 성화는 8세기 초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에 관한 기적 사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717년경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은 칼리프 알왈리드 1세의 고위 관료(Vizier)로 일하고 있었는데, 거짓된 반역의 죄로 고발당하여 손이 잘리는 형을 받았다. 당시 그는 비잔틴의 성화상 파괴론자 레오 이사우리안 황제의 정책에 가장 강력한 반대자였기에 고발당했던 것이다. 이에 요한은 자신의 잘린 손을 들고 성모님의 이콘 앞에서 기도를 바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만일 다시 기회를 주신다면 이제 남은 생은 세속이 아닌 교회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즉시 그의 잘린 손은 다시 붙어 기적적으로 회복되었고, 팔목에는 붉은 선만이 흔적으로 남았다고 한다. 이후 요한은 이 기적적 치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은으로 손 모양을 만들어 자신이 기도했던 성화에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 이콘은 ‘세 손의 성모’라 불리게 되었고, 이 기적의 역사에 따라 성모님의 손을 세 개로 그리게 되었다.

 

이 기적이 있은 후 요한은 예루살렘 외곽의 성 사바 수도원의 수사가 되었고, 자신이 기도하며 기적을 얻었던 이 성모 성화를 그 수도 공동체에 봉헌했다. 그리고 이 성모 성화 앞에서 서약한 대로 자신의 뛰어난 문필력으로 성화상의 공경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을 작성하여 당시 비잔틴 제국 전역을 뒤흔들던 성화상 파괴주의자들과 대적하였다.

 

그 후 이 성화는 다시금 그 수도원의 설립자 성 사바가 방문했을 때 누르시안 스타일의 다른 성모 성화와 함께 선물로 증정되었고, 사바는 자신이 거주하던 그리스 아토스의 성 힐란다르 수도원에 이 성화를 가져갔고, 이후 성 사바의 지팡이와 함께 거룩하게 보존되었다.

 

1347년까지 보존되던 이 성화는 세르비아의 Dušan(1308~1355) 왕이 성 힐란다르 수도원을 방문하고 세르비아로 가지고 가, 14세기 말 수투데니차 수도원 소유로 있다가 15세기 다시 힐란다르 수도원으로 되돌아갔다. 가장 최근까지도 이 성모 이콘은 선출된 원장수사와 함께 힐란다르 수도원의 첫 번째 공식 원장으로 공경받고 있다. 이 이콘의 축일은 7월 11일(구력 6월 28일)과 7월 25일(구력 7월 12일)에 두 번 지낸다.

 

[평신도, 2020년 겨울(계간 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