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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기술의 진보와 새로운 윤리의 경계

by 파스칼바이런 2021. 3. 16.

[시사진단] 기술의 진보와 새로운 윤리의 경계

(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가톨릭평화신문 2021.03.14 발행 [1604호]

 

 

 

 

“기술의 진보는 우리를 새로운 윤리의 경계로 몰아세운다.”

 

위의 말은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이 그의 저서 「제4차 산업혁명」에서 한 말이다. 이 말 다음에 그는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쏟아낸다.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은 질병을 치료하고 부상을 회복할 때만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인간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해도 될까? 만일 후자를 선택한다면 자녀를 원하는 대로 맞춤 생산하는 상품으로 둔갑시켜 소비자 사회의 확장 위험성을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더 나은’ 인간의 정의는 무엇인가 등.

 

우리는 맞춤 아기에 대한 우려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맞춤 아기는 공상과학영화나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라서 그냥 흘러 듣기 일쑤다. 당장 코로나19부터 극복해야 할 난제를 가지고 있는 판에 맞춤 아기까지 걱정할 여력이 없다. 어디 코로나뿐인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 등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불편한 이야기를 조금만 해야겠다. 왜냐하면, 맞춤 아기는 더는 공상과학영화에나 등장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6년 중국 과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유전자 변형 인간 배아를 만들었다. 우리는 최초, 최고가 좋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때 과학계는 물론 전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로부터 2년 후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중국에서 유전자가 변형된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서구사회는 중국에 그 선두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인지 인간배아에 유전자 변형기술을 적용할 가이드라인을 앞다투어 만들고 있다. 물론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제 실질적으로 유전자 변형기술을 인간배아에 직접 사용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다만 그 사용에 제한 사항과 허용 사항을 구분해 놓음으로써 언뜻 보기에 뭔가 윤리적으로 그렇듯 해 보인다. 이런 와중에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변형하여 자궁에 착상시키는 임상시험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겠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동안 조용히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캘리포니아 의과대학 교수인 폴 뇌풀러는 의학적 이유든 단순한 부모의 선택이든 유전자변형을 거쳐 태어난 아기는 진보한 새로운 인간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모든 인간은 특별하지만, 유전자 변형 아기가 특별한 이유는 유전자 설계로 더 건강하거나, 더 뛰어난 아기가 된다고 여기는 점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무엇이 ‘더 뛰어난’ 것인지에 대한 의미는 사회적 관점이 반영된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클라우드 슈밥이 말한 ‘더 나은’ 인간의 정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함께 생각해보자. 여기서 그 정의 자체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폴 뇌풀러의 말처럼 ‘더 뛰어난’, 혹은 ‘더 나은’의 의미가 사회적 관점을 반영한다면, 어디서 그 관점은 영향을 받는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터넷이다. 글로벌 회사들은 소비자의 취향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사용해 우리에게 무엇을 할지 추천도 한다. 앞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은 다각적인 면에서 우리를 새로운 윤리의 경계로 몰아세울 모양이다. 그런데 그 경계 안에 맞춤 아기가 들어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부모가 임의로 자녀의 유전자를 변형할 수 있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 저변에 ‘인간다움’을 넘어서 ‘더 뛰어난’, ‘더 나은’ 등에 대한 의식이 어디서 영향을 받는지도 깨워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