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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희 시인 / 카멜레온의 죽음
아스팔트 위에서 자동차에 치였다 시커먼 아스팔트빛 떨림이 멈추자 선명해진 노란색
저 화사한 빛깔 감추려고 덤불숲에선 이파리 알을 낳을 때는 모래알갱이 계절 없이 피고 지던 색들
아직 피워보지 못한 바다와 하늘, 눈과 바람…… 자신을 스쳐 간 빛이 명멸하는 듯 미처 다 감지 못한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고요해진 색에 햇빛이 자글거린다
박설희 시인 / 약수(弱水)*
오래전부터 당신은 건너오는 중이네 검게 뭉친 머리카락 가지런히 쓸어내리며 늘 출렁거려보지만
감당할 수 없는 당신의 무게 내 속의 수많은 이슬방울과 깃털들, 더듬이와 먼지도 당신의 것
수천수만의 당신이 내게 다가와 수천수만의 내가 마중을 가도, 고작 바닥을 내어주는 일 당신의 그림자로 그 바닥 차곡차곡 채우는 일
동으로 서로 북으로 남으로 당신은 여전히 건너오는 중이지만 당신으로 가득 채워져도 함께 출렁거리지도 흐르지도 못해 고요한 눈 하나 가만히 떠보다가 푸른 이끼 낀 얼굴 들여다보다가
먹구름 같은 머리카락 쓸어내리네 빗방울로 쏟아져 내리네 층층이 쌓인 당신을 스치네
* 부력이 없어 먼지조차 띄우지 못한다는 중국 설화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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