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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백겸 시인 / 메두사의 눈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0.

김백겸 시인 / 메두사의 눈

 

 

  넝쿨장미 묘목을 정원에 심었습니다

  넝쿨장미의 푸른 잎새가 검은 대지의 뿌리로부터 나왔습니다

  넝쿨장미여 안녕

  기쁜 시간의 아름다운 얼굴을 향해 나는 아침마다 인사하고 연구소로 출근했습니다

  넝쿨장미에 숨은 불꽃의 힘을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어본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습니다

  태양이 빛나는 여름이 오자 넝쿨장미안의 구미호가 허공에 붉은 눈을 걸어놓았습니다

 

  아름다움에 중독이 된 내 안의 아이에게 붉은 눈이 말했습니다

  나의 백일몽 속에서 너는 내가 시간의 강에 던진 조약돌이다

  너의 혼은 내가 뿌리에 물을 주고 있는 울타리의 넝쿨장미이다

  나의 깊은 잠에서 너는 내가 손가락으로 집어올린 순간이자 영원이다

  너는 나의 사랑으로 피어난 인간의 얼굴을 한 넝쿨장미이다

 

  두려워라

  메두사의 눈이 내 심장을 쳐다보자 내 영혼이 테세우스의 방패처럼 빛을 냈습니다

  넝쿨장미는 울타리를 넘어가 천개의 감시카메라 같은 눈을 사방에 걸어놓았습니다

  넝쿨장미여 안녕

  기쁜 시간의 아름다운 얼굴을 향해 인사하던 내 마음이 시멘트처럼 굳어졌습니다

  태양과 구름과 소나무가 푸른 돌의 아름다움으로 굳기 직전이었습니다

  넝쿨장미를 보는 내 눈과 나를 보는 넝쿨장미의 눈이 하나였습니다

 

 


 

김백겸(金伯謙) 시인

1953년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데뷔했다. 대학에서 학생기자 활동을 하면서부터 문필활동도 시작. 학보사 편집국장을 맡았다가 1970년 초반 군사 정권에 대한 유신반대 데모에 휩쓸리는 등 불안정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세상에 대한 자유로운 인식을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시집으로『비를 주제로 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북소리』,『비밀정원』이 있고 시론집으로는 『시적환상과 표현의 불꽃에 갇힌 시와 시인들』, 『시를 읽는 천개의 스펙트럼』, 『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라는 광원』,『기호의 고고학』 등이 있다. 2005년 시집 『비밀방』이 문예진흥원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고 그 밖에 〈대전시인협회상〉, 〈제1회 충남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현재 웹진 《시인광장》과 《시와표현》의 주간을 맡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근무. 대전시인협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