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성은주 시인 / 밤의 마스카라, Siesta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1.

성은주 시인 / 밤의 마스카라, Siesta

 

 

  긴 속눈썹을 가진 낙타는 주위를 살피네

  굳은살 가득한 발바닥에 쉼표를 찍기 위해서일까

  커튼이 달린 길을 찾고 있는데

  신기루는 잔인했고

  같은 표정을 가진 길뿐이야

  모래를 견디며 힘주던 다리를 내려놓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어

 

  난 낙타와 같은 피를 가졌지

  길이 자꾸 숨는다는 이유로

  열쇠 구멍을 통해 누군가 들어온다는 이유로

  병원 진료 순서를 기다려

  창문 밖에서 늙은 사내가 오줌을 누는데

  그 밑으로 민들레가 한창이었지

  차트 속에서 내 이름이 개화되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어

 

  우리가 잠들면 고양이처럼

  눈치 안 보며 울어줘

  촘촘하게 암흑이 부릅뜬 공간에서 깨워줘

  사라지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가볍게 우릴 불러줘

 

  진동하는 문양을 따라가는 발목으로

  난 내가 아닌 것처럼 걷는다

  달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발견되던 날

  흰옷을 입고 온 난나*를 보았지

  리본에 묶인 침묵을 본 거니 (주인공 없는 영화에서)

  천국이거나 혹은 지옥일 거라고 (모두가,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어느 나라의 국경을 두드리다가 (위치를 바꿔주면서)

  어느 도시의 어둠과 한몸이 될까 (갑자기 졸음은 쏟아지고)

 

  자막 없이 길어지는 목소리,

  에 지웠다 휘어지고

  경계를 넘어 눈 주위로 흐르는

 

  낮잠 자는 풍습이 필요한 사막은 정오가 되었지

 

* Nanna: 빛나는 자, 고대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달의 신.

 

 


 

성은주 시인

1979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박사과정 재학 중.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