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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지월 시인 / 얼레빗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1.

서지월 시인 / 얼레빗

 

 

분명한 사실은

장독대가 놓여있던 그 자리에

석류나무 한 그루 꽃 피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장독대에는 사철

하늘의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주위를 맴돌았으며

얼레빗 하나 장독 밑에 숨겨져 있었다

눈가에 다래끼가 생겨

마루바닥에 따끈따끈하게 문지른

얼레빛 등떼기를 눈가에 갖다대면

눈물이 핑 돌았으며

번갈아 가며 수십 번도 더

문질러 그짓 반복하고는

아무도 몰래 장독 밑에 숨겼던 얼레빗,

분명한 사실은

장독대와 석류나무와 그 얼레빗이

어디론가 가고 없다는 것이다

내 눈의 다래끼 다 나아

길을 갈 때도 따라다녔던 검정고무신 마저

닳고 닳아 행망이 묘연했다

나는 이런 기억 속에서

음력 초사흗날 저녁 뜨는 달이 보며

그 얼레빗을 떠올리는 것이다

 

 


 

서지월 시인

1955년 대구 달성에서 출생. 1985년 《심상》,《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시가 당선 되어 등단.  시집으로 『江물과 빨랫줄』,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백도라지꽃의 노래』,『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등이 있음.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현재 대구시인학교, 한중문예창작대학 지도시인.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2002년 중국 장백산문학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