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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채원 시인 / 투병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1.

정채원 시인 / 투병

 

 

붉은 파도가 반쯤

눈물이 반의 반

그리고 성분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물질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몸 깊은 곳

순간순간 그들이 섞여지는 비율에 따라

아침엔 어깨가 결리고

밤에는 심장이 아프다

오늘도 누군가 입을 벌려 돌을 던진다

돌이 만드는 파문에 불투명한 물질이 쏟아지고

눈물이 몇 방울 떨어지고

붉은 파도가 방파제를 뛰어넘는다

돌팔매가 돌팔매와 만나 또 다른 돌팔매를 부르는 이면도로,

가슴이 욱신거리고

박동이 빨라지다가 실금이 간다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틈으로 다 흘러나와

서로의 상처를 손가락질하는 구부러진 적의들, 성혈로 빚어진

상처투성이 인간들이 흉터 없는 타인을 갈망하는가

세상은 목마른 내 손바닥에 금 간 잔을 올려놓는다

그러나 어쩌다 오늘은 황금비율?

뇌우가 그쳤다 다시 몰아쳐도 맥박이 일정하고

돌이 날아오는 방향을 알 수 없어도

혈압이 오르지 않는다, 약간의 어지럼증은

고독을 텅 빈 흉곽 안에 걸어 잠그기에 효과적이다

 

계간 『시와 함께』2020년 겨울호 발표

 

 


 

정채원 시인

1996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민음사, 2008)과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문학동네, 2019)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