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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공광규 시인 / 얼굴 반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2.

공광규 시인 / 얼굴 반찬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어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져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공광규 시인 / 놀랜 강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 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공광규 시인

1960년 서울 돈암동 출생, 충남 청양에서 성장. 1986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말똥 한 덩이』 등과 시론집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그리고 논문집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가 있음.  1회 신라문학대상과 4회 윤동주상 문학대상 수상.현대불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 계간 『불교문예』 편집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