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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해림 시인 / 미혹(迷惑)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2.

강해림 시인 / 미혹(迷惑)

⸺유혈목이

 

 

꼬리를 잘리고도 달아나는 붉은 문장이었거나, 미혹迷惑의 슬픈 올가미였거나, 천형을 화관처럼 머리에 쓴

 

나는 아홉 번 죽었다가 열 번 다시 태어났다

 

나의 내면은 늘 에로틱한 상상으로 뜨겁지 어떤 날은 물과 불로, 또 어떤 날은 빛과 어둠으로

 

서로 체위를 바꿔가며 들끓는, 이상한 가역반응에 사로잡힌 발칙한 언어로 스스로 미끼가 되었지

 

저울 위의 고깃덩이처럼 어디가 입이고 항문인지, 금기와 배반의 이미지만 괄약근처럼 오므렸다 펼쳤다 하는

 

나는 한 마리 유혈목이, 금단의 땅에서 쫓겨난 이후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지의 첫 문장이다

 

고통과 황홀은 한 종족이었던 것 불의 혓바닥에 감겨, 불의 고문을 견딘 것들 얼굴이 반짝반짝 광이 나는 걸 보면

 

너의 하얀 목덜미에 아름다운 낙인을 찍어주고 싶어 숨통이 끊어지는 순간 퍼져가는, 맹독의

 

치명적인

 

계간 『시산맥』 2019년 겨울호 발표

 

 


 

강해림 시인

1954년 대구에서 출생. 한양대 국문과 수료. 1991년 《현대시》와 《민족과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구름사원』(한국문연, 2001)과 『환한 폐가』(한국문연, 2006)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