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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진 시인 / 빗방울 화석
아라모, 그날 비가 왔었지 머리를 쓸어내리는 바람을 따라 어둠 속으로 푸른 초원을 찾아 떠났던 너는 잃어버린 내 백악기의 일기장 속에 웅크려 화석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꼿꼿하던 머리를 숙이고 웃음을 팔며 바닥을 전전할 때도 공중을 선회하며 허공에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로 박혀 세차게 쏟아지던 너 그리고 암흑
오래된 너의 문양이 백악기를 지나 빗방울로 내렸다 계승사 약사전 뒤안으로 나를 찾아와 너른 바위에 물방울로 찍힌 너의 발자국을 오늘 나는 보았다
남상진 시인 / 맹그로브
뿌리로 숨을 쉬는 생도 있다
척박한 땅에 난생의 몸으로 떨어져 망망한 대해를 떠돌다 다다른 지표면 붙잡을 피붙이 하나 없는 물컹한 진흙 바닥에 그래도 단단히 뿌리 내렸다
눈물보다 짠 바닷물이 푸른 혈관의 통로를 지나 두꺼운 손가락 마디 끝 꽃잎으로 빠져나오는 수변 성성한 자식들 뭍으로 내보내고 맨몸으로 파도를 견뎌온 나무 밀물과 썰물이 수시로 드나드는 간석지에서 나무로 살아가는 일이 속내를 숨기고 혀를 깨무는 여정이라지만 얼마나 숨쉬기 버거웠으면 혀를 뿌리처럼 물 밖으로 밀어 올려 가쁜 숨을 내뱉았을까
울먹이는 누이의 손을 잡고 어둑한 맹그로브 숲으로 들어가는 저녁 요양원의 긴 복도를 따라 수면 위로 뿌리를 드러내고 가쁜 숨을 이어가는 수척한 아버지 이불같은 밀물이 밀려와 머리끝까지 아버지를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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