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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남상진 시인 / 빗방울 화석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2.

남상진 시인 / 빗방울 화석

 

 

아라모,

그날

비가 왔었지

머리를 쓸어내리는 바람을 따라

어둠 속으로

푸른 초원을 찾아 떠났던 너는

잃어버린

내 백악기의 일기장 속에 웅크려

화석이 되어 돌아왔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꼿꼿하던 머리를 숙이고

웃음을 팔며

바닥을 전전할 때도

공중을 선회하며

허공에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로 박혀

세차게 쏟아지던 너

그리고 암흑

 

오래된 너의 문양이

백악기를 지나

빗방울로 내렸다

계승사 약사전 뒤안으로

나를 찾아와

너른 바위에 물방울로 찍힌

너의 발자국을

오늘

나는 보았다

 

 


 

 

남상진 시인 / 맹그로브

 

 

뿌리로 숨을 쉬는 생도 있다

 

척박한 땅에 난생의 몸으로 떨어져 망망한 대해를 떠돌다 다다른 지표면

붙잡을 피붙이 하나 없는 물컹한 진흙 바닥에 그래도 단단히 뿌리 내렸다

 

눈물보다 짠 바닷물이 푸른 혈관의 통로를 지나 두꺼운 손가락 마디 끝

꽃잎으로 빠져나오는 수변

성성한 자식들 뭍으로 내보내고 맨몸으로 파도를 견뎌온 나무

밀물과 썰물이 수시로 드나드는 간석지에서

나무로 살아가는 일이 속내를 숨기고 혀를 깨무는 여정이라지만

얼마나 숨쉬기 버거웠으면

혀를 뿌리처럼 물 밖으로 밀어 올려

가쁜 숨을 내뱉았을까

 

울먹이는 누이의 손을 잡고

어둑한 맹그로브 숲으로 들어가는 저녁

요양원의 긴 복도를 따라

수면 위로 뿌리를 드러내고

가쁜 숨을 이어가는 수척한 아버지

이불같은 밀물이 밀려와

머리끝까지 아버지를 덮고 있다

 

 


 

남상진 시인

경남대학교 졸업. 2014년 《애지》를 통해 등단. 시집 [현관문은 블랙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