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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노운미 시인 / 시집 속에 갇히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3.

노운미 시인 / 시집 속에 갇히다

 

 

  문을 열었어요. 잘 익은 어둠이 쏟아져 나왔죠. 풍성하게 담겨져 있는 어둠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섰어요. 와와- 소리치며 랄랄랄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서로들에게 말랑거리는 어둠을 던지며 킥킥킥 즐거워했지요. 한 덩이가 내 얼굴로 날아들었죠. 문을 열었어요. 문 속의 문을 열었어요. 문 속의 문, 문 속의, 문, 문들은 마트로시카 인형 같았어요. 문을 열 때마다 사람들이 줄줄 흘렀어요. 숨 막히는 어둠에 열광했어요. 어둠의 벽에 던져져 즐겁게 터지기도 했어요. 어둠에 찔려 신나게 실명하기도 했죠. 어디선가 입 속의 검은 잎*으로 부는 피리소리 들렸어요. 프릴 달린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한 마리 박쥐처럼 어둠에 매달려 춤을 추었죠. 사람들은 서로의 몸을 두들기며 연주를 했어요. 검은 잎들이 팔랑이며 허밍허밍 어둠을 뜯어 먹었어요. 어둠을 요절내기 위해 먹는 것이라고 했어요. 먹으면 먹을수록 짙어지는 어둠을 먹어야 어둠이 될 수 있다고 했어요. 어둠이 되고 싶어요? 어둠이 되고 싶어요.

 

 * 기형도의 유고시집

 

 


 

노운미 시인

2006년 《시선》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2008년 『유령으로 나는 서 있네』(시선, 2008)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