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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순희 시인 / 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3.

구순희 시인 / 줄

 

 

어머니는 평생을 우물만 들여다보며 살았다

나는 우물 안에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버둥거렸다

우물물은 내가 허우적거릴 때마다 첨벙첨벙 넘쳐났다

어머니는 내가 튀긴 물화살 맞고 눈뜨지 못했다

감은 눈으로 우물 들여다보며 두레박만 내려보냈다

물 속에서도 늘 목말랐던 나는

어서 세상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쳤다

두레박 바닥에 어머니 몰래 구멍을 낸 나는

물 대신 출렁출렁 두레박을 탔다

반쯤 올라갔을 때 어머니가 나를 놓쳐 버렸다

두레박은 우물 안 공기들과 부딪치다 깨졌다

시간의 허리춤에서 허우적거리다 곤두박혔다

그러나 물 속에서도 익사하지 않는 꿈

내가 우물에 있는 동안 두레박은 점점 닳아 갔고

내가 몰래 낸 구멍보다 더 크게 찌그러졌다

그래도 두레박이 올 때까지 목놓아 기다렸다

어머니는 다시는 두레박을 내려 보내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를 잇던 마지막 줄이 끊어졌던 것이다

어머니는 늙어서 떵 속 깊숙이 숨어 버렸고

나는 우물이 꽉 차도록 슬퍼하다 시들어 버렸다.

 

 


 

 

구순희 시인 / 쇠로 된 꽃나무

 

 

생의 사전에는 해독 불가능의

난해한 문자들이 가득하다

 

어둠 속에서 구근은

수많은 뿌리혹박테리아

닿을 수 없는 욕망을 매달고 있다

 

오래도록 피지도 않는 꽃나무를 키워 왔다

꽃피고 싶은데 피어야 할 꽃 피지 않는다

어느 때는 축지법으로 다리가 길어졌고

탐욕으로 팔이 축 늘어졌다

말의 부메랑에 속상한

근심의 잔뿌리만 매달고 살았다

이파리는 도르르 말리다가 칼금을 내다가

시멘트로 숨구멍을 막기도 했다

겨우내 얼다 풀리다 동사 직전까지 갔다

잔뜩 웅크린 몸은 꽃샘추위에 떨다가

또 꽃필 기회를 놓쳐 버렸다

아예 꽃망울조차 만들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평생 꽃피지 않을 나무

애초부터 그 꽃피지 않는 나무의 꽃 보려고

해독 불가능의 사전 들여다본다.

 

 


 

구순희 시인

1952년 경남 양산에서 출생. 1981년 《현대시학》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그대 내게로 와서』, 『내 안의 가장 큰 적』, 『수탉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를 만날 것 같다』, 『군사 우편』이 있음. 최근 『시산맥』 출판사의 『내려놓지마』를 출간. 200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개인 창작집 발간 지원금 수혜. 2011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 기금 수혜.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