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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희 시인 / 줄
어머니는 평생을 우물만 들여다보며 살았다 나는 우물 안에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버둥거렸다 우물물은 내가 허우적거릴 때마다 첨벙첨벙 넘쳐났다 어머니는 내가 튀긴 물화살 맞고 눈뜨지 못했다 감은 눈으로 우물 들여다보며 두레박만 내려보냈다 물 속에서도 늘 목말랐던 나는 어서 세상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쳤다 두레박 바닥에 어머니 몰래 구멍을 낸 나는 물 대신 출렁출렁 두레박을 탔다 반쯤 올라갔을 때 어머니가 나를 놓쳐 버렸다 두레박은 우물 안 공기들과 부딪치다 깨졌다 시간의 허리춤에서 허우적거리다 곤두박혔다 그러나 물 속에서도 익사하지 않는 꿈 내가 우물에 있는 동안 두레박은 점점 닳아 갔고 내가 몰래 낸 구멍보다 더 크게 찌그러졌다 그래도 두레박이 올 때까지 목놓아 기다렸다 어머니는 다시는 두레박을 내려 보내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를 잇던 마지막 줄이 끊어졌던 것이다 어머니는 늙어서 떵 속 깊숙이 숨어 버렸고 나는 우물이 꽉 차도록 슬퍼하다 시들어 버렸다.
구순희 시인 / 쇠로 된 꽃나무
생의 사전에는 해독 불가능의 난해한 문자들이 가득하다
어둠 속에서 구근은 수많은 뿌리혹박테리아 닿을 수 없는 욕망을 매달고 있다
오래도록 피지도 않는 꽃나무를 키워 왔다 꽃피고 싶은데 피어야 할 꽃 피지 않는다 어느 때는 축지법으로 다리가 길어졌고 탐욕으로 팔이 축 늘어졌다 말의 부메랑에 속상한 근심의 잔뿌리만 매달고 살았다 이파리는 도르르 말리다가 칼금을 내다가 시멘트로 숨구멍을 막기도 했다 겨우내 얼다 풀리다 동사 직전까지 갔다 잔뜩 웅크린 몸은 꽃샘추위에 떨다가 또 꽃필 기회를 놓쳐 버렸다 아예 꽃망울조차 만들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평생 꽃피지 않을 나무 애초부터 그 꽃피지 않는 나무의 꽃 보려고 해독 불가능의 사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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