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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식 시인 / 소풍
그해 겨울, 먼 나라의 밤처럼 눈은 내렸고 술을 마시고 읍내 택시 정류장 앞에 서 있다가 동네 목사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 눈은 어디서 오지요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시골 교회 마루에서 밤낮으로 기도하는 목사님께 쓸데없는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드문드문 박힌 읍내 마을 불빛을 보며 피안의 강가를 서성일 아버지도 생각해보았다 이런 밤에 떠나는 소풍 긴 타이즈에 반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옆구리에 물통을 매고 눈은 어디서 오는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숙제를 받아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우대식 시인 / 이순(耳順)
이제 묵념 따위가 매우 잘된다 어떤 형식도 괜찮다 벌써 귀가 순해지는지 부끄럽기도 하지만 하나님이나 부처님 이런 분들도 크게 나무랄 것 같지는 않다 내친 김에 봄날 꽃나무와도 한번 크게 겨루어보고 싶다 몇 합 겨루지 못하고 낙화의 황홀에 굴복할지라도 내 안에 뻗은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도 쨍그렁 쨍그렁 낙화의 종년(終年)을 맞고 싶다 봄비에 붉은 녹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내 안의 꽃들이여 순백의 어느 한 날을 우리도 그리워하지 않았겠는가 귀가 순해진다 내 귀를 잘라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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