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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우대식 시인 / 소풍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7. 24.

우대식 시인 / 소풍

 

 

그해 겨울,

먼 나라의 밤처럼 눈은 내렸고

술을 마시고 읍내 택시 정류장 앞에 서 있다가

동네 목사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

눈은 어디서 오지요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시골 교회 마루에서 밤낮으로 기도하는 목사님께

쓸데없는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드문드문 박힌 읍내 마을 불빛을 보며

피안의 강가를 서성일 아버지도 생각해보았다

이런 밤에 떠나는 소풍

긴 타이즈에 반바지를 입고 모자를 쓰고 옆구리에 물통을 매고

눈은 어디서 오는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숙제를 받아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우대식 시인 / 이순(耳順)

 

 

이제 묵념 따위가 매우 잘된다

어떤 형식도 괜찮다

벌써 귀가 순해지는지 부끄럽기도 하지만

하나님이나 부처님 이런 분들도 크게 나무랄 것 같지는 않다

내친 김에 봄날 꽃나무와도 한번 크게 겨루어보고 싶다

몇 합 겨루지 못하고

낙화의 황홀에 굴복할지라도

내 안에 뻗은 칼로 된 나뭇가지와 꽃잎도

쨍그렁 쨍그렁

낙화의 종년(終年)을 맞고 싶다

봄비에 붉은 녹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내 안의 꽃들이여

순백의 어느 한 날을

우리도 그리워하지 않았겠는가

귀가 순해진다

내 귀를 잘라내고 싶다

 

 


 

우대식 시인

1965년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 숭실대 국문과 졸업. 아주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9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천년의시작, 2003) 와 『단검』『설산 국경』 그리고 그 밖의 저서로는 『해방기 북한 시문학론』(2005)이 있음. 「해방기 북한 시문학 연구」로 박사학위 받음. 현재 평택 진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中. 숭실대 국문과 겸임교수.